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01)

이순신 앞에 엎드린 배설은 이렇게 말했다. “적군의 병선은 어마어마하오. 우리 병선으론 상대할 수 없소. 육지로 올라가 싸우는 게 낫소이다.” 이순신은 격하게 반응했다. 수군이라는 자가 어찌 조선의 바다를 버리자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외마디 엄명을 내렸다. “이소격중以少擊衆하라.”

 
통제사를 다시 맡은 이순신이 전라도 지방에 도착하자 백성들이 환호했다. 한 노인이 발걸음을 옮기는 이순신에게 촌주村酒를 건네자, 여러 백성이 “나도, 나도”라면서 나섰다. 안주, 장 단지, 도시락, 찐 닭, 말린 생선, 말린 사슴고기 등을 순신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까닭 없이 받을 수 없소”라면서 이순신이 사양하면 그들은 울며 강권했다. 값을 친다면 몇 푼어치가 안 된다. 오로지 위인을 대접하는 백성의 성의였다. 순신은 부득이하게 이 선물들을 받아 부하장졸들에게 분배하여 먹게 했다. 그런 뒤에 “수군이 패망한 뒤 군인이 부족하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전쟁 1선에 나서기를 원하는 이는 내게 말하라”고 하였다.

백성 중에서 100여명이 나섰다. 그중 나이가 많은 이들을 제외하고 장정 30명만 뽑아내 군복을 입히고 활과 칼을 차게 했다. 군사와 군관으로 뽑힌 장정들은 이순신의 휘하가 되어 나랏일에 나서는 걸 기뻐했다.

순신이 낙안읍내에 들어가니 백성들이 또 눈물을 뿌리면서 나와 맞았다. 이튿날 낙안읍을 떠나 10리쯤 나갔을 때에도 백성들이 길에 늘어서 순신의 행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순신을 둘러싼 환경은 최악에 가까웠다.

“위태롭구나. 이순신이여! 삼도통제사라는 이름뿐이요, 병선이 있나 군량이 있나 군사가 있나 군기가 갖추어졌나. 나랏일이니 힘 미치는 데까지 목숨 있는 날까지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라는 책임감으로 나서기는 하였지만 앞길이 아득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이순신의 앞길에는 오직 실패가 있을 뿐이요, 십중팔구는 죽음이 있을 뿐이요, 그 뒤를 이어서는 참소ㆍ무함ㆍ형벌이 있을 뿐이었다. ‘새를 잡고 나면 활을 치우고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걸 누군들 모르겠는가.”

8월 10일에 보성 땅에 도착한 이순신은 전날의 부하 맹장으로 전공을 많이 세워 가선동지嘉善同知까지 진급한 배흥립을 만나 함께 유숙을 하였다. 또 송희립, 최대성 같은 용장들도 11일 아침에 찾아와 종군하였다.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황정록이 각기 병선 한 척씩을 타고 와서 순신에게 속하였다.

군사와 군관 모으는 이순신

안위는 이순신에게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순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 병선 10여척을 몰고 회령포(전남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로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안위는 또 배설이 적의 형세를 두려워하여 정녕코 배를 몰고 육지로 갔으리라고 하였다. 순신은 배설을 염려하였다. 13일에는 이순신의 영令을 받은 이몽구가 병선 1척을 타고 왔지만 군기를 싣고 오지를 않아 문책만 당하였다.

▲ 이순신은 육지에서 싸우자고 주장하는 배설에게 “바다를 버려선 안 된다”고 윽박질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 무렵, 하동현감 신진이 찾아와 고했다. “악견산성을 지키던 우병사 김응서는 적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나서 미리 달아났습니다. 정개산성을 지키던 진주목사도 달아나 산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신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5일 이순신은 보성 군기고를 검열, 쓸 만한 군기를 가려냈다. 16일에는 김희방金希邦, 김붕만金鵬萬 등 여러 호걸이 찾아와 종군하였다. 모두 전날의 부하였다.

하지만 경상우수사 배설은 그 기간에도 출영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대로大怒하여 배설의 체리替吏(이방 아전)를 잡아다가 오만무례함을 꾸짖고 형장을 때려 보냈다. 배설이 이순신과 만나기를 꺼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순신이 다시 상관이 됐으니 노량목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따져 물을 것 같았다. 둘째,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자’는 이순신의 엄명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이순신이 자신의 체리를 잡아다가 장형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제야 배설은 겁을 먹고 이순신의 앞에 나아가 석고대죄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배설을 반가운 안색으로 맞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수는 적이 오거든 싸워서 이기는 것이 제일 큰 일이오. 지금 적선이 녹도에 왔다 하니 일각을 늦출 수 없소. 다행히 13척 병선이라도 남았으니 곧 나아가 적을 막아야 하오. 출전할 준비를 어서 하오.”

배설은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소인인들 싸울 뜻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적선이 노량목을 넘어선 것만 해도 500여척은 넘을 것이고 한산도 저쪽에 있는 적선을 합하면 1000척 이상은 넉넉할 것 같소. 13척의 병선으로 이렇게 우세한 적의 함대를 막으려는 것은 적수공권으로 무너지는 태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과 다름없소. 소인의 우매한 생각에는 차라리 육지에 올라 상륙하는 적군을 막는 것이 득책이 아닌가 하오. 사또의 뜻이 어떠하올지?”

이순신의 격한 엄명

이순신의 곁에는 제장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중 배설의 진언을 그럴듯하게 듣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순신은 벌떡 일어서 팔뚝을 들면서 강개한 태도와 큰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 쳤다.

“그러면 우리나라 삼천리 강토의 해상권을 일본군에게 모조리 내어주자는 말이오? 설사 조정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라도 우리 수군은 목숨 있는 날까지 해상 제해권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전략상으로 말할지라도 원균의 잘못한 패전으로 낙심할 필요는 없소. 전라우도 이북의 충청ㆍ경기ㆍ황해ㆍ평안 제도의 병선은 아직 남아 있으니 불과 몇달 이내에는 다시 대함대를 조직해 낼 수 있을 것이오. 더구나 우리는 도서 항만의 험함을 알고 조수의 순역을 잘 알고 있어서 잘만 이용하면 이길 수도 있소. 한나라 광무제의 곤양대전, 주유의 적벽대전 모두 이소격중以少擊衆(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병을 친다)하였소.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수나라 병사 100만을 수만으로 격파하고 양만춘楊萬春은 당나라 군사 100만을 안시성安市城 하나로 막아냈거든 적의 병선이 비록 많다 하나 두려워할 것이 무엇 있소? 어서 출전준비를 해야지!”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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