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사거리~퇴계로 2가 교차로 가보니…

호텔이 발에 치인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서울 곳곳,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에 가면 간판만 조금씩 다르지 여기도 호텔, 저기도 호텔이다. 그래서 더스쿠프(The SCOOP)가 ‘호텔 천국’으로 불리는 서울 중구 회현사거리에서 퇴계로 2가 교차로 방향까지 680m를 걸어봤다. 소문 그대로, 호텔이 발에 치였다.

▲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서울 중구에만 67개의 숙박업소가 있다. 앞으로 33개가 더 들어설 예정이다.[사진=뉴시스]
지난 2월 23일 화요일 오후 2시 20분. 눈 또는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예보와 달리 봄처럼 따사로운 햇빛과 차가운 바람이 동시에 온몸을 파고들었다. 기자는 이날 회현사거리에서 퇴계로 2가 교차로 방향을 향해 걸었다. 약 680m.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을 걸으며 여행가방을 끌고 지나가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옷깃이 스쳤다. 호텔 앞에서 관광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지나치기도 했다. 그러던 기자의 눈에 띈 흥미로운 풍경 하나. 몇걸음만 살짝 옮겨도 이내 호텔 간판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건너 맞은편 뉴오리엔탈 호텔을 시작으로 데이즈 호텔, 르와지르 호텔, 그리고 세종호텔까지. 굳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호텔 간판만 11개였다.

왔던 길을 되짚어 회현사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세종호텔에서 나오는 두 외국인과 마주쳤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는 청년들이었다. 평소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대학 동기 니키타(22)와 미하엘(22)은 특별히 시간을 맞춰 한국 여행을 결심했다. 전날(22일) 오후 7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은 “명동거리를 구경하고 호텔에 잠시 들렀다가 N서울타워에 가려고 나오던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한국행을 결정하면서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탓에 오는 내내 불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원하던 호텔엔 빈방이 많아 어렵지 않게 숙박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곳 호텔에 빈방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다시 몇걸음 옮겨 호텔스카이파크Ⅲ 앞.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놀러 왔다는 주링링(29)과 링팡(25)을 만났다. 2년 전 서울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주링링이 링팡에게 서울을 소개해주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았다. 저렴한 화장품을 구입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는 두 사람은 “호텔 예약은 어렵지 않았고, 또 도로변에 있어 쉽게 찾아올 수 있었다”며 한국여행의 소감을 전했다. 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는 마한(18) 역시 숙소를 예약할 때 어렵다거나 비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구동성으로 “호텔 예약이 쉽다”고 했다. 사실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중구에만 특급호텔부터 호스텔까지 67개(2016년 1월 31일 기준)의 숙박업소가 있다. 게다가 업계의 과도한 ‘외국인 관광객 모시기’ 경쟁이 출혈경쟁으로 이어져 온라인에서는 큰 폭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호텔을 예약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알려져 “한국을 여행할 때는 호텔에 직접 가서 예약을 하지 말라”는 조언 아닌 조언이 SNS를 통해 돌고 있을 정도다. 일단 호텔에 가서는 방이 있는지 여부만 확인한 뒤 예약은 할인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라는 거다.

680m 거리에 호텔이 11개

실제로 가격이 얼마나 할인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스마트폰으로 당일 호텔 예약 서비스앱인 ‘데일리호텔’을 다운로드했다. 그 시각 인근 호텔은 6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예약이 가능했다. ‘솔라리아 니시테츠 명동’은 31만9000원에서 62.38% 할인된 12만원에 예약할 수 있었다. ‘르와지르 서울명동(25만원→7만2400원)’ ‘나인트리호텔 명동(28만4000원→8만8000원)’ ‘더스테이 호텔(21만원→7만9800원)’도 마찬가지로 6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과도한 출혈경쟁은 앞으로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구에만 33개(7161실)의 호텔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서다. 한국은행 건너편(명동2가 104)에는 오는 9월 완공 예정으로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의 ‘명동 더 발리오스 호텔(창성건설)’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이렇게 공급량이 많으면 시장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적으로 당연한 이치다. 가격 하락을 막으려면 수요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혈경쟁이 일어나고, 업계 전체가 활력을 잃는다. 문제는 지금 호텔업계가 이런 상황이라는 점이다.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조금씩 줄다 보니, 호텔업계의 경영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호텔업 종사자들의 법적 지위가 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호텔이 가득한 거리를 걷던 기자의 귀에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한 맺힌 절규’가 강하게 박힌 것도 어쩌면 이런 상황 때문이다. 업계의 침체는 곧 노동자의 위기를 방증하기 때문이다.

호텔 천국의 또 다른 풍경

20여년간 데스크·홀에서 서비스를 했다는 김상진 세종호텔 전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한탄했다. “호텔 사업주가 호텔의 경영이 악화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인력 구조조정이다. 인건비가 호텔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일부 호텔의 경우에는 정규직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이들은 언제든 차가운 거리로 쫓겨날 수 있다.”

가슴이 먹먹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 화려한 조명이 켜진 호텔이 외로워 보였다. 바람이 찼다.
김미란·노미정·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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