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호텔의 눈물

▲ 대기업 호텔 브랜드들이 특급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의 비즈니스 호텔을 공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대형호텔 브랜드가 이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비즈니스 호텔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 등의 감소로 수익이 줄자 싼 숙소를 주로 찾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유치해 만회하겠다는 계산에서다. 출혈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 호텔업계가 ‘두손 두발 다 들게 생겼다’며 한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라스테이’ ‘롯데시티호텔’ ‘L7’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최근 몇 년간 새로 생긴 호텔 브랜드의 이름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기업 계열사들이 만든 비즈니스 호텔 브랜드라는 점이다. 이런 브랜드의 탄생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특급 호텔은 대기업, 그 이하 등급의 호텔은 중소기업의 몫’이라는 국내 호텔산업의 보이지 않는 벽이 깨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벽이 무너진 원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호텔 시장이 급변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자 특급호텔의 객실을 운영하는 게 녹록지 않게 됐다. 여기에 엔저, 반한기류 등으로 특급호텔의 주요 고객층인 일본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물론 이 기간에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가파르게 늘었지만 특급 호텔에는 별 도움이 안 됐다. 유커 대부분이 일본인 관광객과 달리 저렴한 숙박시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비즈니스 호텔시장에 뛰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기업 중 가장 먼저 비즈니스호텔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은 롯데호텔이다. ‘롯데시티호텔’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올 1월에는 서울 중구 명동에 새로운 비즈니스 호텔 브랜드인 ‘L7 명동’을 열었다.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라는 브랜드를 내걸었다. 2013년 11월 경기도 동탄점을 신호탄으로 6개의 호텔을 더 지었다. 신라호텔 객실료 대비 절반 수준의 가격이지만 서비스와 품질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조선호텔도 지난해 5월 서울 용산구에 ‘포포인츠’라는 브랜드로 비즈니스 호텔을 오픈했다.

문제는 이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게 대기업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용적률 추가, 층수 높이제한 완화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으로 쇼핑몰ㆍ빌딩운영업체들이 리모델링을 통해 비즈니스호텔을 짓기 시작했다. 오피스빌딩에 주로 투자를 하는 자산운용사들도 뛰어들었다. 덕분에 서울시내 관광호텔의 숫자는 2012년 151개 2만8342실에서 2015년 291개 4만1640실로 크게 늘어났다.

중소 호텔 사업자들이 최근 울상을 짓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대 자본을 경쟁으로 이기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 비즈니스 호텔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기업은 관광객을 모집하겠다며 객실 가격을 줄여도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는 중소기업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대기업 브랜드와 가격 경쟁을 하다 도산하는 비즈니스호텔이 우후죽순 생겨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호텔산업은 100% 민간 자본이기 때문에 줄도산을 해도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 산업이 서비스가 아닌 가격 경쟁에 매달리는 순간 외국인 관광객의 재방문율이 줄어들게 마련”이라며 “정부와 언론의 블루오션이라는 말을 믿고 막대한 자본이 몰렸지만 결국 관광산업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공급 과잉’에 치인 우리나라 호텔 산업에 ‘양극화’까지 덮쳤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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