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과잉의 시대

“서울 지역에 외국인이 묵을 호텔이 부족하다.” 정부가 이렇게 외치자 관광업계가 흔쾌히 응답했다. 최근 3년 동안 새로 생긴 호텔의 수가 기존에 있던 호텔과 맞먹는 수준이니 보통 짝짜꿍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호텔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면 시장은 ‘공급과잉 경고등’을 울리고 있다. 누가 진실을 깨물고 있는걸까.

▲ 정부와 관광업계는 외국인 관광객이 해마다 급증하면서 이들이 묵을 숙박시설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사진=뉴시스]

2012년,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활짝 열렸다. 관광업계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기업으로 치자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셈이기 때문이다. 기쁜 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저성장에 봉착한 제조업계의 한계를 관광산업에서 찾았다는 안도감에서다. 관광산업은 앉은 자리에서 고객을 불러 들이는 ‘황금알 산업’이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은 뭔가를 먹어야 하고 물건을 구매해야 하며 잠을 자야 한다. 여기에 쓰이는 돈은 고스란히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온다. 정부가 관광산업으로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단꿈에 젖어 있던 이유다.

끝나지 않은 호텔광풍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숙박시설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급증했는데, 그들이 묵을 만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던 거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 06~2010년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율은 평균 8%에 달하는데, 관광ㆍ숙박시설의 증가율은 3.9%에 불과했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2012년 7월 호텔 객실난 해소를 위해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관광호텔 특별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시 법안 검토보고서에는 이런 분석이 실려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70% 이상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수도권의 숙소 부족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아울러 호텔을 건립할 때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상업지역 용적률을 대폭 높이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가 관광ㆍ숙박업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얼어붙어 있던 건설시장에 봄바람이 불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건설업체들은 너도나도 호텔 건설 작업에 착수했다. 이 때문인지 서울 지역의 호텔 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관광호텔 특별법이 적용된 기간은 2012~2015년으로 단 3년. 이 기간 새로 지어진 호텔의 수는 150개, 1만7816실이다. 호텔 수와 객실 수는 2011년 대비 각각 106.3%, 74.7%가 증가했다. 폭발적인 증가율이다.

이런 ‘호텔 붐’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일몰 예정이던 관광호텔 특별법이 1년 더 연장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학교 앞 호텔법’으로 불리는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이 법은 학교 앞 75~200m 지역에 심사 없이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유해시설이 없고 100실 이상의 객실 규모를 갖춘 호텔에 한해서다. 이전엔 학교 경계로부터 50~200m 범위 안에 호텔을 지을 경우, 사업자는 학부모로 구성된 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했다. 호텔을 지을 수 있는 부지가 훨씬 더 넓어진 셈이다.

공급과잉 보여주는 통계

이들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건 ‘호텔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해 이런 전망을 내놨다. “2017년이 되면 서울 지역 관광호텔의 객실 수가 1만8000실이 부족할 것이다.” 둘째 이유는 호텔이 투자를 유인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거라는 기대감에 있다. 실제로 문체부는 ‘학교 앞 호텔법’을 설명하면서 “23개 호텔이 새로 지어지면서 7000억원의 투자효과와 1만7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밝혔다. 정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서울 지역 호텔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더 세워야 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투자와 일자리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의 논리, 과연 합당한 걸까. 전문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호텔이 더 공급돼야 하냐구요? 방이 남아요 남아. 손해를 볼 정도로 가격을 낮춰도 공실이 생길 정도입니다(중소 호텔업체 관계자).” “2014년부터 공급과잉입니다. 심지어 호텔 신축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하던 금융업계에서는 신규 공급 규모가 지나치다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수요가 부족하다니요.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A비즈니스호텔 CEO).”

감정적인 말도, 추상적인 주장도 아니다. 명확한 근거가 있다. 첫째는 정부의 숙박공급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호텔객실 수는 총 3만3864실에 이를 전망이다. 2013년 2만4083실에서 9781실이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올해 1월 기준 사업승인 신청 허가를 받은 호텔의 객실 수만 2만8926실이다. 9781실이 늘거라는 전망치의 3배에 가까운 숫자다.

머나먼 관광대국으로의 길

둘째는 숙박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숙박시설은 두개의 부처가 관리한다. 관광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관광숙박시설(문체부 관장), 공중위생법의 적용을 받는 일반숙박시설(보건복지부 관장)이다. 쉽게 말해, 관광숙박시설은 호텔, 일반숙박시설은 모텔이나 여관이다.

문제는 ‘호텔이 부족하다’는 통계는 대부분 관광호텔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100실 이하의 숙박업체, 숙박업 등록을 하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와 오피스텔은 통계에서 빠져 있다. 현재 통계만으로는 실제 숙박업소의 수요ㆍ공급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다.

셋째는 시장에 벌써 ‘공급과잉 시그널’이 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지역의 객실이용률이 현격하게 줄고 있어서다. 관광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서울지역 호텔 객실이용률은 2011년 80.7%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75.2%까지 매년 하락했다. 2014년 76.9%로 잠시 반등했지만 지난해에는 이 수치가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지역의 판매객실 평균요금이 줄고 있는 점도 적신호다. 서울지역 2014년 판매객실 평균요금은 15만2760원으로 2013년 대비 4.6%나 감소했다. 객실당 수입도 11만4722원으로 2.4% 감소했다. 호텔의 난립하면서 가격 출혈 경쟁으로 이어졌다는 방증이다.

금기용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설별로 세밀한 수급상황을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며 “우선 관리 부처가 나눠져 있는 현행 시스템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지자체가 계획승인 단계에서부터 관리하지 않으면 공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급 과잉 문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정부가 주장한 ‘신규 투자ㆍ일자리 창출’도 허사가 될 공산이 크다. 경쟁 심화로 폐업하는 호텔이 발생할 경우, 산업 전체가 침체에 빠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14년 숙박업 종사자의 근로자 수는 6만4560명으로 호텔 붐이 일어나기 직전인 2010년 6만6858명보다 줄었다. 윤철한 경실련 국책사업부 팀장은 “새로 지어진 호텔뿐만 아니라 기존에 있던 호텔들도 수익이 나지 않아 종업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퇴사를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호텔을 늘릴게 아니라 볼거리ㆍ놀거리를 먼저 늘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호텔의 공급과잉이 업계에 ‘부메랑’을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빨간불은 벌써 켜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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