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03

이순신은 전 함대에 출동하여 싸우라고 명하고 스스로 선봉이 되어 최전선에 나섰다. 겁을 내는 군사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순신이 탄 기함의 각양 대포는 적에게 많은 손실을 주었다. 일본군은 이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며 각양 대포를 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더구나 이순신 함대 뒤를 받치고 있는 민선(의병)을 후군後軍으로 여겨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이순신의 병선은 13척뿐이었다. 그런데 55척이나 되는 적선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군사들과 피난선들의 사람들은 무서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적선 13척이 벽파진을 향해 포를 쏘면서 달려들었다. 이순신은 전 함대에 출동하여 싸우라고 명하고 스스로 선봉이 되어 최전선에 나섰다. 겁을 내는 군사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순신이 탄 기함의 각양 대포는 적에게 많은 손실을 주었다.

적은 이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며 각양 대포를 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더구나 이순신 함대 뒤를 받치고 있는 민선(의병)을 후군後軍으로 여겨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이순신은 추격을 꾀했지만 바람과 조수가 거슬러 올 때이므로 군을 거두어 벽파진으로 돌아왔다. 피난민들은 순신이 적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춤을 추었다.

순신은 여러 장수를 자신의 병선에 불러 놓고 이렇게 명했다. “오늘 밤에는 적이 야습할 염려가 있으니 반드시 염두에 두고 응전할 준비를 하여야 된다.” 또 민선에는 “오늘 밤에 포성을 듣거든 일제히 횃불을 들고 멀찍이 따라 나오라”고 명하였다.

▲ 전선에서 도망을 친 권율의 거짓 보고를 선조는 알아채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아니나 다를까. 과연 적이 멀찍이서 쳐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순신의 제장은 모두 겁을 냈다. 그러자 순신이 말했다. “미리 준비가 된 우리는 겁낼 것이 없다. 만일에 회피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시행하리라. 적이 착탄거리 안에 들기 전에는 대포와 화전을 쏘지 말고 대기만 하고 있으라.”

적의 포성이 점점 가까워졌다. 순신의 배는 나는 듯이 섬 그늘에서 쑥 나오며 대포를 쏘고 북을 울렸다. 한시간 동안 싸우다가 적은 순신의 복병에 해를 입고 달아났다. 순신의 군사는 대승을 거두어 의기충천하였다.

이순신의 진격에 겁 먹은 적군

이 무렵, 도원수 권율은 일본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나서 고성에서 진주로, 또 진주에서 초계로, 초계에서 대구 팔공산성으로, 다시 팔공산성에서 운봉으로 달아났다. 운봉에서는 부하 장병들이 흩어져 버렸다. 권율을 믿느니 도망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였다. 승장 처영은 이렇게 탄식했다. “이 시기에 어리석은 권율을 따라다니다가 발병 나겠구나. 아서라, 산중으로 가자.”

군사를 모두 잃어버린 권율은 체찰사 이원익과 함께 면목 없이 한양으로 올라왔다. 병조판서 이항복은 권율의 사위다. 그리하여 병조는 “권율이 한양을 호위하라는 왕명을 받았다”고 둘러대면서 모두의 눈을 속이려 했다.
 
선조는 권율을 보고 크게 놀라 “남방 적세가 거센 이때에 경이 싸우지 아니하고 어찌 쉽게 상경하였나?” 하였다. 권율은 “서울을 호위하라는 지령을 받았으니 남방에 있을 수 없어 이원익과 함께 상경하였습니다”고 고하였다. 선조는 권율의 거짓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지령이 무엇이냐?”며 좌우를 둘러봤다. 좌우에 있는 서인대관들은 “경기 지역이 위태하여 권율이 안 오면 지킬 수 없어 불렀다”고 고했다.

하지만 사실을 눈치챈 일부 제신은 “권율을 탄핵해야 한다”며 이렇게 주청을 올렸다. “권율이 어리석어 속임을 당한 후 조정에 거짓말을 하였고, 수군을 간섭하여 삼도수군으로 패하여 전멸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싸우지 않고 먼저 달아나 군심을 잃어 장졸이 다 흩어지게 하였고, 필마로 서울에 들어와 호위하러 왔다고 둘러대며 임금을 속였으니 그 죄가 중합니다.” 그러나 선조는 불청하였다.

이때 일본 총대장 금오수추는 수륙 다섯길로 제장을 나누었다. 육로로는 남원ㆍ전주ㆍ충주를 공략하고, 수로로는 전라ㆍ충청 양도의 해상권을 장악한 뒤 한강하류 연안을 공략하고, 수륙군은 병진해 한양 또는 평양을 거쳐 명나라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가등청정은 “조선의 곡창인 전라도 평야에서 군량을 수확하여 조달하라”는 풍신수길의 훈령을 받고 질풍같이 남원을 향하였다.

가등청정이 가는 길에는 경상ㆍ전라 양도의 요충지가 있었는데, 안의현의 황석산성이었다. 안음현감 곽준郭遵은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죽기로써 황석산성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고, 군사와 가족을 모두 산성 안으로 옮겼다. 조종도는 이렇게 결전의 의지를 내비쳤다. “나는 도망하는 놈들과 함께 더럽게 죽지 않으리라. 나는 나라를 위하여 싸워 죽으려 한다.” 그리고 가족을 데리고 곽준과 함께 산성에 들어오는 날 시를 지어 뜻을 나타냈다.

도망 치느라 바쁜 권율

마침 이때에 김해부사 백사림이 황석산성에 들어와 주장이 되었다. 군사들은 일개 현감인 곽준보다 용장인 백사림을 신뢰하였다. 수일이 못 되어 일본군은 황석산성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주장이 된 백사림은 적병이 무서워서 어느 틈에 도망하였는지 없어지고 싸움은 끝이 났다. 백사림의 군사도 흩어져 도망가버린 탓에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현감 곽준은 적장 가등청정의 항복 권고를 물리치고 끝까지 싸웠다. 그의 아들 곽이상郭履祥, 곽이후郭履厚와 함께 적의 칼에 죽고 곽준의 사위 유문호柳文虎는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유문호의 아내인 곽준의 딸 곽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내가 죽지 아니한 것은 남편이 있기 때문이거니와 이제 남편조차 마저 잡혀가니 내 어찌 살랴”라면서 목을 매어 죽었다. 함양군수 조종도도 장순과 허원의 본을 받아 성중에서 최후까지 싸워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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