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 소비자가 돈을 쓰고 제품을 구매하는 건 대단한 파워이자 권리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소비자를 응대하는 기업 부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업과 소비자 중 누가 갑甲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은 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비자가 갑”이라고 답했다. 블랙컨슈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통채널에게 호통을 치는 못된 소비자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이제 소비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소비자들에게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서 누가 갑甲이고 누가 을乙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소비자가 을”이라고 대답한다. 개별 소비자는 기업만큼 제품이나 법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도 그걸 파악하기가 힘들고 문제를 인식해도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해 단체행동을 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유다.
 
그런데 2월 셋째주 대對소비자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종사자 모임에서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소비자가 단연 갑”이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주로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가 겪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를 겪고 화가 난 소비자 중 일부는 이들에게 고성과 폭언을 퍼붓고 문제 해결과 상관없는 분풀이를 한다고 한다.
 
기업의 대고객담당부서 종사자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종사자, 소비자를 최일선에서 응대하는 이른바 ‘감정노동자’라고 불리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다반사로 겪는다. 그들에게 소비자는 그들의 일과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갑이다.

1~2년 전부터 블랙컨슈머나 감정노동자라는 키워드가 부각되면서 소비자 권리뿐만 아니라 소비자 책임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 책임의 기본은 소비자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소비행동을 할 때 다른 구성원, 기관, 환경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도 환경을 보존하고 개선하는 소비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성장과 공생을 위한 소비를 해야 할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상거래에서는 거래당사자로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행동하고 거래상대를 서로의 고객으로서 바라보고 약속을 지키고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다.
 
대학생들에게 소비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 사례들을 찾아보게 했다. 커피숍의 예부터 보자. 4인용 탁자 혼자 차지하고 장시간 컴퓨터하기, 화장실에 개인 쓰레기 버리고 가기, 설탕과 빨대 한 주먹 뽑아가기.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사지 않고 복사해 쓰기, 빈 강의실에 불 켜놓기, 책상 위 쓰레기 안 치우고 가기, 식당에서 1인분 사서 리필한 다음 둘이 먹기. 음식점에서는 이물질 나왔다고 거짓말하고 돈을 안 내거나 서비스 받기, 예약해놓고 펑크 내기. 백화점이나 홈쇼핑에선 예쁜 옷 사서 필요할 때 한번 입고 환불하기, 사은품만 챙기고 환불하기 등등. 어쩌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들로 치부할 수도 있을 텐데 대학생들 스스로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자각해준 것이 고마웠다.

소비자가 돈을 쓰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대단한 파워이자 권리다. 소비자가 화폐투표(dollar vote)를 통해 사회와 기업을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할 때 소비자는 갑이 된다. 개별적인 구매행동이나 소비행동이 가져오는 사회적 영향을 간과하지 말자. 소비자도 소비자로서의 권리주장과 더불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 상거래와 계약에서 서로 약속을 지키고 배려하고 존중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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