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 은퇴한 줄 알았던 역전의 노장들이 4·13 총선의 주역으로 등장해 화제다. 왼쪽부터 김종인 대표, 이한구 의원, 전윤철 위원장.[사진=뉴시스]
4ㆍ13 총선에서 눈에 띄는 것은 70대 어르신들의 약진이다. 은퇴한 줄 알았던 역전의 노장들이 등장해 여당과 야당에서 지휘봉을 잡고 나섰다. 어정쩡하게 얼굴마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행사하며 늪에 빠진 한국정치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77세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괴멸론’ ‘햇볕정책 수정론’ ‘경제민주화’ ‘야권 대통합론’ 등 이슈를 연이어 쏟아내며 일약 이번 선거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자신을 더불어민주당이라는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라고 부를 정도이니 ‘패권주의’와 ‘낡은 진보’라는 비판을 받았던 제1야당은 좋든 싫든 급류를 타게 생겼다. 당내 반발이 변수지만 잘하면 2002년 월드컵축구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 같은 뛰어난 리더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공천사령탑을 맡은 이한구(72) 의원도 만만찮다. 거침없는 수사와 추진력으로 단숨에 공천에 관한 모든 권한을 움켜쥐었다. 기존 틀을 바꾸지 않으려는 당내 계파와의 한판승부가 흥미진진하다. 78세의 국민의당 전윤철 공천위원장도 청와대 비서실장, 감사원장,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거물로 활약이 기대된다.

현대산업개발 부회장을 지낸 이방주 제이알투자운용 회장은 73세의 나이에 시와 해설을 곁들인 책 「시와 함께 걷는 세상」을 내고, 선친인 이해랑 연극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스스로의 인생을 관조하며, 사회에 기부를 많이 하는 멋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70대가 되면 느낌이 어떠냐고.

“인간에게는 질풍과 노도의 20대 사춘기에 이어, 70세를 전후해 제2의 사춘기가 찾아오는데 이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창의력이 샘솟는 기분을 느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찍이 공자는 70대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70대의 활약을 노욕으로 폄훼하기도 하지만 수명 100세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인생 후반기에 불꽃을 태우는 사람들이 훨씬 멋지고 아름답다. 고故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80세가 넘어 재선에 성공해 미국의 자부심을 빛냈다. 중국의 등소평은 90세 가까운 나이에 남방순례를 하면서 실용주의에 입각한 개혁조치로 중국경제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 공자의 인생은 후반기에 훨씬 반짝거린다. 그는 빈털터리에 정신적 동반자인 수제자 안연과 외아들 공리를 먼저 떠나 보내고, 황혼이혼마저 당한 별 볼일 없는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난세 한복판에 뛰어들어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이 땅에 이상理想을 실현하고자 했던 영원한 청년정신으로 살았다. 당시 평균수명이 30~40세에 그치던 시절 공자는 55세에 인생을 새 출발했다.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기 시작해 14년간 모함을 당하고, 적에게 포위되거나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자객을 만나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으며, 식량이 떨어져 굶어죽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상갓집 개’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석가모니가 6년간의 고행 끝에 부처가 되었고,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의 수난을 겪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되었듯이, 공자는 14년간의 수난을 거쳐 마침내 유가철학의 대가로 우뚝섰다. 2500여년 전을 살다간 공자는 고지식한 책상물림이 아니라 모험심과 열정으로 가득찬 도전자였다. 그는 73세의 어느 날 ‘마침내 하나도 이룬 것이 없음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이룬 ’위대한 인생역정‘을 마감하게 된다.

누구나 1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1년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천왕성은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84년이 걸린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감안할 때 우리의 인생은 천왕성의 1년과 맞먹는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은 길어졌다. 너무 멀리 있는 목적지를 보며 지레 겁먹거나 한숨 쉬지 말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이룬 것이 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세상에 되는 일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인생의 열쇠는 후반부에 있고, 후반부의 시작은 40세일 수도 60세나 70세일 수도 있다. 얼마나 젊게 사느냐가 문제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제보다 늙은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날들보다는 젊은 법이다.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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