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중심 수출동력 확보전략의 한계

▲ 우리나라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 2010년보다 7개나 줄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한국경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다.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져서다. 우리나라의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감소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정부는 세계 1위 품목을 다수 갖고 있는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을 위한 정책만 펴고 있다. 소가 도망가는데 엉뚱한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수출경쟁력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정체돼 있다는 얘기만 나와도 국민들이 덩달아 불안해하는 까닭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2월 15일 발표한 보고서가 이목을 끈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품목수는 전년 대비 1개 감소한 64개였다. 순위도 한단계 하락(13위)했다.

수출 품목수 1개 줄어든 게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1위 수출품목들이 한국 전체 수출액의 19.5%(2014년 기준)를 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개 감소’는 위기 징후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2010년보다는 7개가 줄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해석할 만한 시그널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시장 점유율 2~10위권의 품목수가 2012년보다 늘었다. 1위는 줄었지만 1위를 향해 달려가는 품목수는 늘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과 2위와의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다. 실제로 2위와의 점유율 격차가 10% 이상인 우리의 1위 품목은 전체의 40%에 불과하다. 1위 품목이 화학제품(34.4%), 철강(17.2%), 공작기계 등 비전자기계(10.9%), 섬유(9.4%), 전자기계(9.4%) 등 일부 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1위 품목의 81.3%가 5개 분야에 집중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세계 1위 품목을 떠받치고 있는 곳이 사실상 중소기업이라서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기업규모별 세계일류상품 생산 비중은 중소기업이 46개(68.7%)로 가장 많았다. 대기업은 12개(17.9%)에 머물렀다.

세계일류상품은 ‘세계시장 점유율 5위 이내ㆍ5% 이상’ ‘품목별 세계시장 규모는 연 5000만 달러 이상’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산자부가 매년 발표한다. 중소기업의 세계일류상품 비중은 매년 늘고 있고, 대기업은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이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2~10위권을 떠받치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기업 가운데 48.5%(2013년 기준)는 벤처기업이었다는 중소기업청의 자료도 이를 증명한다.

세계시장 1위 품목수 감소

이런 맥락에서 지난 1월 취임한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맞춤형 R&D와 수출 마케팅 등 ‘성장단계별 패키지 지원사업’을 통해 내수형 중소기업의 수출기업화를 추진할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우수제품 현지화, 홍보ㆍ디자인, 판로개척 등을 위해 올해 399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가 ‘수출경쟁력을 높이겠다’면서 내놓은 해법은 주 청장의 계획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 2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새로운 수출동력 창출할 방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간 주도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정부의 뒷받침을 통한 협업을 꾀하겠다. 신산업에 대한 네거티브식 규제 심사와 융ㆍ복합 신제품에 대한 사후규제 적용으로 민간의 신산업 진출을 지원하겠다.” 각종 규제를 풀어 신산업을 지원해 수출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건데, 이는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중심 정책이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융ㆍ복합 신제품’이란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중점적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IoT헬스케어ㆍ핀테크ㆍ자율주행자동차ㆍ무인항공기(드론) 등이다. 한결같이 삼성전자ㆍ현대차 등 대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과 이해관계가 맞물린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대기업 민원 해소 정책’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조금만 거들어주면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로 죽죽 뻗어나갈 수 있는 중견ㆍ중소기업들은 내버려둔 채 대기업을 위한 신산업 육성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일류상품을 누가 떠받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강소 中企 10개면 삼성전자가 1개”  

MFS는 미국의 테일러메이트ㆍ캘러웨이ㆍ타이틀리스트 등 유수업체들이 인정하는 명품 골프채 샤프트(손잡이) 생산업체다. 하지만 디자인 개발비용과 마케팅 비용이 부족해 이름을 효과적으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 ‘STAR’ 농구공으로 유명한 신진상사도 기술력 하나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공식 사용구(축구공)를 납품했고, 지금은 글로벌 스포츠용품 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마케팅 비용이 부족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런 기업만 잘 찾아 육성해도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 10개면 삼성전자 1개’라는 슬로건을 사문화死文化하지 말자는 얘기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대기업을 위한 신사업 지원이 아니라 흙 속에 숨은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것이다. 더 늦으면 기회가 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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