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행동 나선 개인투자자

‘한줄로 다니는 개미.’ 이슈만 좇는 개미투자자의 성향을 꼬집은 말이다. 공매도에 속절없이 당하는 이유도 사실 ‘한줄로 다니는 개미’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최근 개미들이 달라졌다. 공매도 세력에 의한 피해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공매도에 농락당하던 개미들이 ‘열과 오’를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에 맞서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일러스트=더스쿠프 포토]

숫자는 많지만 자금력은 미약한 개인투자자를 흔히 ‘개미투자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부족한 정보력에 치이고 때론 작전세력에 치여 손실을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슈만 좇아 주식을 사는 경향을 빗대 ‘한줄로 다니는 개미’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증권 시장의 약자로 인식되던 개미투자가가 변하고 있다. 개미들이 모여 증권 시장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 8조8750억원 중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67.6%, 금액은 6조38억원에 달했다. 2009년 67.7% 이후 최고치다.

그렇다고 개미가 주식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 건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개미투자가가 순매수한 상위 1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34.1%이었다. 일부 개미투자자는 손실의 이유를 공매도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증시 하락기에 공매도 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긴 게 손실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이전 같으면 눈물 한번 머금고 ‘그러러니’ 했을 터. 하지만 요즘 개미는 다르다. 공매도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셀트리온 주주들이 대표적이다.

셀트리온 주주들은 주식 대차 서비스를 하지 않는 증권사로 주식 계좌 거래를 옮기는 방식으로 공매도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차 서비스는 주식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이다.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의 사전절차라고 보면 쉽다. 셀트리온 주주들이 주식 대차 서비스를 통해 공매도에 저항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움직임은 다른 개인투자자들도 움직였다. 셀트리온 주주들의 행동이 증권카페 등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면서 주식 계좌 이관에 동참하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났고, 이들은 대차거래를 하지 않는 KB투자증권ㆍLIG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로 쏠렸다.

LIG투자증권 관계자는 “공매도 논란 이후 주식 계좌를 옮긴 고객이 증가했다”며 “이슈 발생 이후 약 630억원의 셀트리온 주식 계좌가 유입됐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 대차거래는 적정 수준 이상의 물량을 확보해야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며 “대차거래에서 발생하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대차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KB투자증권 관계자는 “정확한 이관 물량을 알려줄 순 없다”라면서도 “공매도 이슈로 주식계좌를 옮긴 고객이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공매도 잡기 나선 개미투자자

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과의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이다. 분식회계, 임상실험 실패 등 각종 루머에 시달리며 공매도의 대상이 됐다. 2014년 4월에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지분을 매각하겠고 선언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당시 “루머가 있으면 해명하고 사업 자금으로 사용해야 할 수천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하루에 전체 거래량의 20%에서 공매도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부가 공매도를 정지시키는 것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셀트리온은 최근까지도 공매도 세력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40거래일 중 공매도 비중이 10%를 웃돈 거래일은 14거래일에 달한다. 4일에 한번꼴로 전체 주식거래의 10%에 달하는 공매도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공매도에 맞서기 위해 신문광고를 게재한 소액주주들도 있다. 제일약품 소액주주 모임은 지난 2월 26일 신문에 소액주주가 함께 공매도에 맞서 저항하자는 내용의 전면 광고를 냈다. 제일약품 소액주주 모임은 공매도가 주식시장 활성화라는 역할은 하지 못하고 시장참여자의 투자심리만 악화시켜 주식시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공매도 공시제’가 어떤 효과를 낼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제일약품 소액주주 모임 관계자는 “공매도의 긍정적인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정주가까지 하락해도 매수에 나서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이관 등 실질적인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회사에 주주명부 자료를 요청해 주주에게 공매도의 폐해를 알리는 등의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매도의 타깃이 된 상장사도 공매도 세력에 의한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나섰다. 코스닥 상장사 토비스는 지난 2월 5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매도와 관련한 호소문을 올렸다. 토비스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을 이용해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공매도 사례가 급격히 늘어났다”며 “주주의 자산가치 하락이 우려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매도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주식 대차 서비스 해지 ▲대차 거래가 지원되지 않는 증권사로의 주식 이관 ▲대차 주식의 상환 요청 등을 요청했다.

토비스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이후 주식 거래에서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 날이 증가하면서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면서 “2014년 회사 실적이 정점을 찍었고 지난해에도 3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등 양호한 펀드멘털과 상관없는 공매도 세력의 매도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토비스의 주가는 지난해 2월 6일 1만9400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섰다. 공매도 관련 호소문을 발표한 지난 2월 5일 8950원까지 하락하며 반토막이 났다.

이처럼 개미투자자는 물론 상장사까지 과도한 공매도 세력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국회는 지난 3일 3년 동안 잠자고 있던 자본시장법(공매도 공시제)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시장은 주가급락의 요인으로 꼽힌 공매도에 제동이 걸릴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매도 잔고를 보유할 경우 인적사항과 잔고비율을 공시해야 한다. 또한 0.1% 이상 변동 시에도 보고해야 한다. 만약 공시를 하지 않거나 허위로 공시했을 경우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순기능보다 역기능만 나타나

하지만 이 제도가 공매도에 따른 개미투자자의 피해를 줄여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는 인적사항 공개로 개미투자자의 화살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는 물론 상장사까지 공매도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것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계속해서 논란이 되는 만큼 처음부터 다시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공시제가 공매도의 폐해를 줄여 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며 “공매도 잔고비율이 높다는 것이 오히려 개인투자자의 공매 불안 심리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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