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삼박자가 꼭 맞아떨어졌다

ZTEㆍ비보ㆍ오포ㆍ르TV…. 무엇인지 아는가.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을 흔드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다. 쉽게 말해 ‘제2의 샤오미’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ㆍLG전자를 빼곤 변변한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없는 우리로선 충격적인 일이다. 중국에서 신흥 스마트폰 세력이 굴기屈起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 중국에서는 제2의 샤오미로 불리는 스마트폰 후발주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샤오미小米. 5년 전만 해도 짝퉁 소리를 듣던 스마트폰이다. ‘이름이 좁쌀이 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레이쥔 샤오미 공동창업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레젠테이션 때 검은색 터틀넥, 청바지, 운동화를 착용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짝퉁 잡스’라면서 낄낄댔다. 그리고 2016년. 샤오미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글로벌 IT업계를 뒤흔들 만큼 위풍당당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샤오미의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와 애플, 화웨이에 이어 4위다. 이제 샤오미를 ‘좁쌀’이라며 비웃을 이는 세상에 없다.

문제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흔드는 게 샤오미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2의 샤오미’를 노리는 중국의 신예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ZTEㆍ비보ㆍ오포ㆍ르TV 등이 대표적인 신흥세력이다. 스마트폰 ‘블라이드S’ 시리즈로 유명한 ZTE는 러시아에서 시장점유율 4~5위를 기록하며 고속성장 중이다.

르TV는 지난 1월 열린 ‘CES 2016’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글로벌 칩업체 퀄컴의 스티브 몰렌코프 CEO가 르TV의 스마트폰을 들고 기조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새로운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이들의 글로벌 진출은 ‘중국발發 스마트폰 혁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갈 길이 바빠지는 건 우리나라 스마트폰 제조사다. 세계시장에서 애플과 자웅을 겨루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하락세인데다 뚜렷한 신흥세력도 보이지 않아서다. 한때 노키아와 함께 피처폰 왕국으로 불리던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린 지 오래다. 2000년대 중ㆍ후반 국내 스마트폰 2~3위 자리까지 꿰차던 팬택은 지난해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이쯤 되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선 ‘제2의 샤오미’가 속속 등장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선 제2의 삼성전자, LG전자가 나오지 않느냐다. 답은 별다른 게 아니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산업이 삼성전자ㆍLG전자의 양강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첫째 이유는 불안한 내수시장이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2014년 스마트폰 이용자 수는 4038만명. 우리나라 인구가 약 5155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78%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중국 기업은 광활한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중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55.3%다. 10억이 훌쩍 넘는 인구의 절반만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건데, 성장률이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다.

中 후발주자의 매서운 진격

정옥현 서강대 미래기술교육원장은 “중국 기업의 경우 내수 판매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 있다”며 “반면 단말기 소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벤처기업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복잡한 스마트폰 유통구조도 ‘제2의 삼성전자’를 막는 요소다. 우리나라 제조사는 ‘이동통신사’라는 유통망이 없으면 판로를 개척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이통사가 보조금을 줄이거나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시장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결국 ‘제조사~이동통신사’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건데, 벤처기업이 이런 네트워크를 갖추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스마트폰의 복잡한 유통구조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시장은 보조금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마케팅도 보조금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반면 보조금 의존도가 크지 않은 중국시장에서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사용할 수 있어 스타트업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와 달리 중국 스마트폰 기업은 정부의 막대한 정책 지원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지원책은 2007년 철폐된 ‘휴대전화 생산자격제도’다. 국가 면허가 없어도 일정한 품질 기준만 갖추면 합법적으로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우리의 눈엔 별것 아니지만 사회주의식 경제시스템을 가진 중국으로선 상당한 특혜를 준 셈이다.

덕분에 불법으로 모조품을 양산하던 중국의 IT기업들이 고유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IT 기업이 몰려 있던 중국의 선전深圳은 글로벌 IT 하드웨어 분야를 선도하는 중심지로 재탄생했다. 화웨이의 중국 본사도 이곳에 있다. 샤오미의 단말기를 생산하는 폭스콘의 공장 위치도 선전이다.

복잡한 유통구조, 스타트업 출현 발목

정구민 국민대(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업계는 샤오미의 제품에 놀랄게 아니다. 이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사업 환경과 혁신 동력에 놀라야 한다. 탄탄한 내수시장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흔드는 이들의 성공 방정식을 후발주자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지금 중국 본토에는 ‘제 3의 샤오미’까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IT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제2의 삼성전자, 제2의 LG전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 이젠 찾을 때가 됐다. 이러다간 스마트폰마저 중국에 밀린다.
김다린ㆍ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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