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104

일본군은 단숨에 전라도를 손에 넣으려 했다. 그래서 두패로 갈라 전라도를 향해 진군했다. 첫번째 패의 선봉은 소서행장, 두번째 패의 선봉을 가등청정이었다. 8월 15일 남원성 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명나라 장수 양원과 그 부하 장병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 명군은 일본군을 무서워해 도망치거나 일본군에 매수돼 이순신을 방해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황석산성이 무너질 무렵, 남원성에선 명나라 장수 양원이 성을 높게 쌓고 그 주위에는 연못을 팠다. 성 위에는 대포를 걸고 요동병 3000명과 조선 군사 2000명을 배치했다. 전주에는 또 명나라 장수 진우충이 남원성과 같은 설비를 만들어 놓고 지키고 있었다.

황석산성을 빼앗고 넘어선 일본군은 일거에 전라도를 손에 넣으려고 두패로 갈라서 진군했다. 소서행장이 선봉을 선 도진의홍, 가등가명의 무리 5만군은 전주를 향하여 쳐들어갔다. 가등청정을 선봉으로 한 흑전장정, 과도직무의 무리 5만군은 남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8월 13일에 남원성으로 쇄도하였다.

일본군이 성 아래에 온 것을 본 명나라 장수 양원과 그 부하 장병은 무서운 생각이 나서 소름이 일었다. 그들은 남원에 들어온 이후로 전라도 각지에서 소와 돼지를 가져다가 날마다 잡아먹고 취하고 또 배부르게 먹었다. 또 양가 부녀자를 붙들어다가 진중에 두고 간음하였다. 그래서인지 조선 백성들은 가족을 산중으로 피난시키고 늙은 부녀들만 남아 있었다. 술 취한 명나라 병사들은 민가에 횡행하여 여자를 내어 놓으라고 폭행을 했다. 그래도 백성들은 반항을 못하였다.

남원성 안에는 조선장수로는 전라병사 이복남, 조방장 김경로金敬老, 별장 신호, 광양현감 이춘원李春元 등이 있었다. 전라병사 이복남은 양원의 부름을 받고도 출전하지 않다가 어쩔 수 없게 되자 100명도 못 되는 군사를 데리고 왔다. 이복남도 출전하길 꺼렸는데, 이는 싸움을 두려워해서라기보단 명나라 군사의 교만한 행동을 미워한 탓이었다.

임진 이래로 전라도의 지사志士들은 조정에 있는 대관이나 명나라 장졸이나 다 믿지 아니하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순변사 이일, 통제사 원균 같은 자격 없는 장수에게 병권을 주어 상주 패전, 칠천도 패전 등 치욕을 두 눈으로 봤다는 것, 둘째는 조정에 있는 대관이란 작자들이 당파싸움으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여서 정정당당한 충신의 행동이 없다는 것, 셋째는 행주산성 싸움에 이긴 것은 전라도 군사들의 힘이었건만 논공행상할 때에는 뒷줄에 숨어 목숨을 아끼던 경관京官들만 중하게 대접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이순신을 모함하여 잡아들여 한산도의 삼도수군이 지휘자를 잃어버려 전군이 몰사했다는 것이었다.

일본군과 명나라 병사의 횡포

명나라 군사를 미워한 까닭도 있었다. 명병이라면 졸병까지도 오만무례하고 행패가 심하여 적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군과 싸워서 이긴 것은 평양전투 한번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이원익 이하 조선 장수들이 앞장선 덕분이었다. 여기에 이여송은 벽제관에서의 패전으로 적군을 무서워하면서 꽁무니를 빼기 바빴고, 유정 같은 작자는 싸움은커녕 적의 반간에 매수가 되어서 뇌물을 먹고 이순신의 행동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어찌 됐든 전라도에서의 싸움은 치열했다. 8월 14일에 일본군은 삼면으로 남원성을 에워싸고 싸움을 돋우었다. 명나라 총병 양원은 남문 밖에 있는 민가를 불살라 버렸다. 성 밖으로 나아가 적병과 싸울 용기는 없어, 적병이 숨어서 싸울 자리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싸움도 하기 전에 백성의 집만 태워버린다고 백성들은 울고 원망하였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적병은 나무를 베어 계단을 만들고 성 밖에 파놓은 못을 메웠다. 남원성에 침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명나라 군사는 추석이라며 술과 떡을 먹고 질탕하게 놀기 바빴다. 이튿날 새벽에 적군은 사면으로부터 성을 기어올랐다. 그제야 놀란 양원 이하 장졸은 성중에 있던 재물을 약탈하여 몸에 지니고 말을 타고 북문으로 달아나려 하였다.

북문을 지키던 조방장 김경로가 양원의 말고삐를 붙들고 눈을 부릅뜨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었다. “싸우지 아니하고 어디를 간단 말이오? 대인은 대명황제의 명을 받아가지고 이 남원성에 싸우러 오지 아니하였소? 어디를 간단 말이오? 이 문을 열 수 없소!” 김경로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양원은 “무례하다”면서 호통을 치면서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김경로의 강경한 태도와 조선군사의 형세가 자못 불온한 것을 보고는 안색을 바꾸면서 이렇게 간청했다. “전주에 가서 군사를 청해오겠다. 문을 열어달라.”

▲ 조선 백성은 살기 힘들다며 아우성을 쳤지만 명군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탄로난 양원의 거짓말

김경로는 “안 되오. 이 남원성을 같이 죽기까지 지킵시다”라면서 듣지 아니하였다. 양원은 마지못하여 김경로의 상관인 전라병사 이복남을 불러 문 열기를 명하였다. 김경로가 명장 양원에게 거역하는 것을 본 이복남은 그 죄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 김경로에게 문 열기를 명하였다. 김경로는 자기의 대장인 이복남의 영을 거역할 수 없어 문을 열어줬다. 양원 이하로 명병들은 앞을 다투어 북문으로 내달아 달아났다.

양원의 군사가 다 나간 뒤에 병사 이복남도 따라서 나가려 하였다. 김경로는 칼을 빼어 들어 전라병사 이복남이 탄 말의 목을 베고 “오랑캐 놈들은 다 달아났더라도 조선의 국록을 먹은 병사兵使가 어디를 간단 말이오? 이 성에서 싸워 죽읍시다”라고 하였다. 광양현감 이춘원도 이복남의 뒤를 따라 도망하려다가 김경로가 이복남이 탄 말을 베는 광경을 보고 피하지 못할 줄 알고 부하군사를 독려하여 싸우기를 결심하였다.

김경로는 북문을 닫아걸고 이복남을 앞세우고 싸우기를 재촉하였다. 병사 이복남은 김경로의 충의에 감동하여 군사들에게 전력으로 수성하기를 격려하였다. 군사들도 죽기로 결심하고 함성을 지르고 남문을 향하여 돌격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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