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산업처럼 호황 계속될까

전문가들은 엔젤산업을 두고 ‘가장 마지막 자리’라고 말한다. 불황이 없는 산업이라는 의미다. ‘엔젤 비즈니스’ ‘에잇포켓’ ‘골드키즈’ 등 쏟아지는 신조어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불황이 만든 애프터ㆍ리퍼브렌털산업은 엔젤산업처럼 손쉽게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 엔젤산업은 불황이 없다. 하지만 모두가 날개를 달 수는 없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풍경 하나. 지난 설에 김모(41ㆍ남)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8)의 책가방을 사러 갔다. “첫 손녀의 가방은 우리가 사주고 싶다”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선 것이다. 한 스포츠브랜드 매장 앞을 지날 때 딸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진열된 가방 하나를 지목했다. 초등학생 가방인데도 10만원이 넘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부모님은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가방 선물은 시작이었다. 2박 3일의 연휴 동안 아이의 주머니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각각 세뱃돈을 받았다.

명절이라 인사차 방문한 친척 어른들도 지갑을 열어 아이의 입학을 축하했다. 저녁에는 동창회를 마친 아빠의 친구들도 잠깐 들러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갔다. 그렇게 여덟살이 된 아이의 주머니에는 수십만원의 지폐가 쌓였다.

풍경 둘.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시장의 한 대형완구매장. 할머니ㆍ엄마딸 3대가 완구를 구경 중이었다. 일곱살 아이가 맘에 드는 것을 골라오자 할머니는 이내 계산대로 향했다. 인근 액세서리 매장 앞 풍경도 비슷했다. 할머니와 이모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아이가 맘에 드는 머리핀을 고르자 할머니가 지갑을 열었다.

한 아이를 위해 여덟명(부모ㆍ조부모외조부모삼촌이모)이 지갑을 연다는 ‘에잇포켓(eight pocket)’. 이는 엔젤산업의 호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케팅 신조어다. 극심한 불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엔젤산업은 연일 성장세다.

호황의 복판에 서있는 건 뭐니뭐니 해도 완구업계다. 특히 지난해부터 ‘터닝메카드’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완구업체 손오공은 2014년까지 적자(-34억9937만원)에 허덕이다 단숨에 흑자전환(2015년 영업이익 103억9622억원)으로 뛰어오른 거다. 회사 측은 “완구 판매로 인한 실적 향상과 수익성 개선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앞서 ‘또봇’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14년에는 영실업이 영업이익 300억원을 달성했다. 장난감 전문업체인 ‘토이저러스’가 입점해 있는 롯데마트의 완구 매출도 매년 성장세다. 2013년에 0.6%(전년 대비)에 머물렀던 매출신장률은 2014년 1.6%, 2015년엔 11.2%로 증가했다.

엔젤산업의 호황은 영역도 가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엔젤산업이 의류용품완구에 국한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캐릭터식품엔터테인먼트키즈카페로 확대되는 추세다. IT업계에서도 교육용 모바일기기, 어린이용 스마트워치 등 다양한 키즈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엔젤산업에는 자녀를 한두명만 낳아 집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1.24명이다. 2014년의 1.21명보다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저출산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보니 과거에 여럿으로 분배되던 소비가 한 아이에게 집중되고 있다. 엔젤산업이 불황은커녕 갈수록 호황을 누리는 이유다.

엔젤산업이 불황과 상관없이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면 불황이 만든 시장도 있다. 애프터 마켓리퍼브리스렌털 등이다. 이들 산업은 불황에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심리와 맞물려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엔젤산업처럼 이들이 언제까지 호황을 누린다는 보장은 없다. 호황을 가져다주는 요인이 부메랑이 돼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렌털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소비자들이 렌털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돈 부담이 없어서다. 이런 이유로 월 납입료를 지불하고 필요한 물건을 빌려 쓴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소유권 이전형 렌털의 경우 총 렌털비가 일시불 구입가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제품은 총 렌털비가 일시불 구입가보다 3배 이상 비싸기도 했다.

▲ ‘터닝메카드’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손오공은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사진=뉴시스]
한국소비자원은 구체적 사례도 꼬집었다. 여기 렌털 전문 쇼핑몰과 오픈마켓에서 판매 중인 동일한 디자인의 침대가 있다. 이 침대를 오픈마켓에서 일시불로 구입하면 101만원이다. 하지만 렌털을 하면 의무사용기간인 3년 동안 월 6만8594원을 납입해야 한다. 총 렌털비를 계산하면 246만9384만원이다. 가격 차이가 무려 145만9384원(244%)이나 난다. 렌털을 하면 관리를 해준다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차가 너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가하는 렌털수요만큼 불만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소유권 이전형 렌털’ 관련 소비자상담은 2011년 7447건, 2012년 6988건, 2013년 8558건으로 점점 늘어났다. 그중 계약 해지와 관련된 불만이 전체의 37.1%로 가장 많았다. 중도해지 위약금 과다 부과, 청약철회 거부가 이유였다. ‘품질 및 AS 불만(20.6%)’ ‘부당 채권추심(17.4%)’ ‘계약 조건과 다르게 이행(12.1%)’ 등도 뒤를 이었다.

유통 전문가나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의 불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때문에 현재 수혜를 누리고 있는 산업들이 앞으로도 재미를 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하지만 ‘어떻게든 절약하겠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악용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시장을 이끌어간다면 호황의 달콤함은 예상보다 빨리 사라질 수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직한 서비스만이 지속가능한 호황을 담보한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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