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경쟁 속 中企의 한탄

다이소가 지난해 매출 1조원을 찍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승부를 건 게 알찬 실적으로 이어졌다. 줄어든 실적 때문에 울상인 대형 유통채널도 저가경쟁을 시작해 값싼 PB상품을 줄줄이 론칭하고 있는 건 대표 사례다. 하지만 저가경쟁의 한복판에 서있는 중소 제조업체는 ‘벙어리 냉가슴’ 신세다.

▲ 대형 유통채널의 저가경쟁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를 부추길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불황에는 시장의 판도가 바뀐다.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진 탓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일본에서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양판점 돈키호테와 100엔숍 세리야가 인기몰이에 성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황의 터널’에 수년째 갇혀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가성비로 무장한 다이소(다이소아성산업)가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건 대표 사례다. 다이소는 지난해 약 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매출액 8900억원, 영업이익 560억원을 달성한 2014년보다도 실적이 성장했다. 면봉·A4용지·슬리퍼·여성용품 등 값싼 제품을 판매해 기록한 실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장세다.

다이소의 이런 약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지효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불황이 길어질수록 판매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하는 유통채널의 시장점유율이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백화점·마트·홈쇼핑 등 국내 유통채널들이 판매가를 줄줄이 낮추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찾질 않아서다.

특히 대형마트의 발걸음이 눈길을 끈다. 생수·우유·라면 등 먹거리부터 커피포트·헤어드라이어·체중계 등 소형가전, 애완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PB상품(Private Brand·자체상표)을 론칭하고 있어서다. NB상품(National Brand·제조업체 브랜드) 대비 평균 30% 저렴한 PB상품은 가성비를 좇는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는 효율적인 무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이마트 총 매출액 12조8000억원 중 PB상품 비중은 11.5%(1조4800억원)에 달했다.


이런 유통채널의 저가경쟁은 소비자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매일 쓰고 버리는 생활용품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달갑지만은 않다. 대형 유통채널의 저가경쟁이 중소 생활용품 제조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를 부추길 수 있어서다. 대형마트에 9년간 소형가전제품을 납품한 업체의 한 관계자는 “저가 트렌드 탓에 납품단가를 인하하지 않으면 매대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우리처럼 중소 납품업체는 저가경쟁의 후폭풍이 밀려오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저가경쟁이 ‘중소기업의 판로販路’를 줄일 수도 있다. 예컨대, 대형마트가 가성비를 위해 PB상품의 비중을 늘리면 납품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제과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PB제품 때문에 실적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도 “예전엔 우리 제품이 소비자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진열됐었는데, 요즘엔 그 자리에 마트 PB상품이 들어섰다”면서 “이러다 아예 물건을 빼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손성원 중소기업중앙회 유통서비스산업부 차장은 “몇몇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 등 대형유통채널이 생활용품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게 문제의 근원”이라면서 “중소기업이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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