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30) 신달자 시인 편

신달자(73) 시인은 “행복은 그냥 고르면 되는 기성품이 아니다”고 말했다. 내 손으로 만들고 내 눈으로 발견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행복의 척도는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금수저는 행운아일 뿐 행복과 행운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 신달자 시인은 “행복은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행복한 삶을 살라고들 하는데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거 아닌가요? 결국 행복에 대한 자기 기준을 무언 중에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에 대해 나 나름의 기준을 정립하고 싶지만 솔직히 막막합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A 멘토가 멘티에게

맞아요. 행복의 기준은 모호합니다. 정답이 없어요. 저마다 자기 잣대가 있을 뿐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유복한 가정에서 좋은 머리로 태어나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대체로 행복하다고 하죠. 이런 사람은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고 노후도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막상 별로 없어요. 사실 이들은 행복하다기보다 굉장한 행운아인 거죠. 행복과 행운은 달라요.

돈은 불행을 예방하고 불안을 완화해 주는 효과는 있지만 행복의 조건은 아닙니다. 연봉이 2000만원인 사람이 어쩌다 20만원 생기면 행복해 하지만 연간 1억원 이상 버는 사람은 수입이 두배 이상 늘어난다고 행복이 증진되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풍요롭다고 행복하지 않아요.

나는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들고 돈 버느라 밤새 원고 쓰던 시절에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그럴 필요 없었던 사람들보다 행복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잣대로는 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나는 힘든 시간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었거든요. 행복해지려 돈을 버느니 사람을 버는 게 낫습니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이에요. 기업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성장합니다.

행복은 조건보다 사람의 성정性情에 달렸습니다. 행복해지는 데는 어떤 소질이 필요해요. 매사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쉽게 행복해집니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또 귀가 달려 있어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타고난 성정이 긍정과 거리가 멀다면 훈련을 해야죠. “이만하면 괜찮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행복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행복한 사람은 없어요.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길게 만들 수 있을 뿐이에요. 수시로 행복감을 맛보려면 행복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스펙은 섬세한 감성입니다. 이런 감성만 갖추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어요.

우리는 흔히 내 것이라야 소유욕을 충족하고 행복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파란 하늘, 해질녘 붉은 놀, 구름을 향해 날아가는 새, 한강이나 공원 같은 공공재를 통해서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세금으로 만든 공원이니 공동의 소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서울 사람이라면 서울의 자연을 통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꼭 내 것이라는 등기부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행복이란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몫인지도 모릅니다. 오감五感을 동원해 무상으로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느껴 보세요. 행복해질 거 같은 방향으로 나 자신을 밀고 가세요. 행복은 어쩌면 의지의 산물인지도 몰라요.

오감으로 맛보는 행복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추구합니다. 좋은 침대를 사고 싶어 몇년 동안 돈을 모으고서 막상 사고 나면 침대의 효용을 즐기는 게 아니라 침대에 덮을 이불로 눈을 돌리는 식이죠. 그래서 소유가 허황한 겁니다. 내 것으로 소유하고도 다른 것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행복해지지 않죠.

나는 ‘행복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불행하다면 언젠가 행복해질 겁니다. 행복해지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이제 20대잖아요? 불행한 일조차도 행복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곧 불행도 아니에요. 행복의 무대에 서지 않았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니에요. 20대에 행복을 포기해 80년 남은 인생을 무덤으로 만들지 말아요.

성공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끼나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노정을 행복하게 걸을 수 있어요. 꼭 금수저 물고 태어나야 행복해지는 거 아닙니다. 아니, 마치 신분과도 같은 이런 생득적生得的 지위로는 사실 행복해질 수 없어요. 젊은 시절 달동네를 지나 산에 다녔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김치전 부쳐 나눠먹으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그 시절 대표적인 ‘흙수저’였죠.

나누는 기쁨이 주는 행복도 빠뜨릴 수 없죠. 겪어보면 알지만 밥 얻어먹을 때보다 밥값 낼 때 더 행복합니다. 밥값 내지 않으려 신발끈 다시 매면 돈이 굳을 거 같죠? 결국 그 돈도 떠나가게 돼 있어요.

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반드시 행복해져야 하는 거 아닙니다. 부부도 서로 다투지 않는다면 무덤덤한 관계가 좋아요. 연애할 때처럼 뜨거우면 오래 못 가요. 높낮이가 없는 톤으로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사실 부부가 평생 무덤덤하게 살기도 쉽지 않아요. 행복을 틈타 불행이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이죠.

내 나이 서른다섯에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아이가 셋이었는데 막내딸은 두 살이었어요. 시어머니는 식물인간 상태였습니다. 그때 불행하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면 난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누구나 불행한 일을 겪습니다. 그 불행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요.

영화처럼 사는 행복한 인생은 영화 속에나 있는 거예요. 친구와 만나 차 마시고 전화 걸어 안부 묻고 그런 일상, 일상의 여유가 행복이에요. 행복은 냅다 쫓아가면 달아납니다. 마치 지평선처럼. 그렇게 뒤를 쫓는 동안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어요. 오히려 실망해 돌아오다 어느 길목에서 행복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행복의 척도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남들의 기준으로 밀어붙인다고 행복해지지 않아요. 내가 행복을 느끼고, 내 의지로 행복에 다가서야 행복해져요. 행복은 기성품처럼 상자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 손으로 만들고 때로는 내 눈으로 발견해야 돼요. 내가 맛본 행복을 남들이 재단할 수도 없죠. 행복 찾기는 이기적인 활동이에요. 행복을 좇는 방향도 저마다 다르죠.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행복해질 수 있어요.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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