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안철수는 부엉이 상이죠.” “김정은은 스위스산 치즈를 좋아합니다.” 요즘 대부분의 식당은 예능인지 시사인지 경계가 모호한 ‘정치 떼토크’ 프로그램을 켜놓고 있다. 하나같이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사회자와 패널의 과장된 몸짓과 큰 목소리도 ‘정치 떼토크’의 아이덴티티다. 당연히 주요 정치의제는 소멸되고 웃음만 남는다. 삶이 고단한 시청자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정치를 예능처럼 소비한다.

정치의제는 그렇게 우리의 머릿속에 씹다만 오징어 다리처럼 너덜너덜해진 이미지로 스쳐 지나가고, 그사이 ‘대중교통요금인상안’ ‘테러방지법’ 등은 공론화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국회를 통과한다. 이후 남는 건 정치에 대한 냉소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서 정치는 나와 동떨어진 일이 되고, 정치인은 불쾌함을 주는 존재로 전락한다.

일본 아베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 중 한명인 스키타 아쓰시 일본 호세이대 법학부 교수가 이런 현상을 심층 분석한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를 출간했다. 그는 정치를 ‘결정·대표·토론·권력·자유·사회·한계·거리’라는 8가지 키워드로 설명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스키타 교수에 따르면 시민과 정치를 멀어지게 만든 요인은 ‘경제 글로벌화’와 ‘주권국가의 상대화’다. 국경을 넘나드는 돈·사람·물자의 흐름, 원전사고 등 개별국가가 결정하고 통제하기 어려워진 사회문제 때문에 기존 정치학의 강력한 전제였던 주권국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거다.

저자는 ‘당사자성 회복’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정치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내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의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적 사고思考’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 속에서 저자는 두가지 측면에서 시민의 당사자성 인식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먼저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다. 나와 관련된 ‘결정’을 왜 저들(의회·대표자)이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강한 리더의 결단주의와 개인의 무력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둘째는 ‘권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저자는 ‘권력’이 내 동의를 바탕으로 의회나 대표자에게 위임돼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내가 선출한 권력을 비판하는 게 스스로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획득하고, 미래의 변화와 개선을 꾀할 수 있다는 거다.

이 책에는 한국어판 특별대담도 수록돼 있다. 저자와 번역가 임경택 전북대 교수가 한일 양국에서 유사하게 전개 중인 정부의 난폭한 결단주의 사례를 들여다 본다. 정치적 사고를 해야 할 때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책으로 정치의 눈을 깨쳐보는 건 어떨까.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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