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일용직 노동자는 無名氏

▲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이 임금만 제대로 받아도 건설업계 낙수효과는 되살아날 수 있다.[사진=뉴시스]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렇게 규제를 풀었는데도 이 모양이다. 대형건설사마저 영업손실폭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일까.

역대 정부의 경기부양책 1순위는 부동산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 내놓은 부동산경기 부양대책만 해도 횟수로 10차례가 넘는다. 그중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재건축 연한 규제 완화, 기업형 임대 ‘뉴스테이’ 활성화 등 상당수는 건설경기 부양책이다. 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주택매매가 활발해지고, 사람들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서민들의 소비도 늘어나길 원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상당수 경제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거엔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경험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건설경기 부양을 추진했다. 하지만 낙수효과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혈관이 막혀 있는데 수혈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서민들은 그렇다고 치고, 그럼 건설사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에 수혜를 입었을까. 흥미롭게도 그렇지 않다. 정부는 최근 영업을 유지해도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조차 못 갚는 ‘좀비기업(한계기업)’들을 솎아냈다. 그 과정에서 추려낸 대형 좀비건설사는 14곳에 달했다. 이 가운데 12곳은 법정관리 신청이 가능한 D등급이었다.

금융감독원이 골라낸 좀비건설사의 기준은 부채비율 100% 이상, 여신액 500억원 이상, 최근 3년 사이 2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 2년 연속 마이너스 영업현금흐름을 보인 주채무건설사였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에도 건설사들은 제대로 된 수익을 못 냈다는 얘기다. 게다가 건설사들의 수익률은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형건설사 4곳(현대건설ㆍ삼성물산ㆍ대우건설ㆍ대림산업)의 최근 5년간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을 살펴본 결과 2011년 대비 현대건설은 -1.7%, 삼성물산은 -5.4%(2014년 합병 전 기준), 대우건설은 -0.8%, 대림산업은 -2.6%였다. 문제는 건설사의 영업손실이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나친 해석이 아니다.

먼저 건설업계의 수주구조부터 살펴보자. 건설업계의 수주시스템은 최저가낙찰제다.[※참고 : 올해 2월 1일 이후 발주하는 정부의 공공공사에는 종합심사낙찰제를 실시한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건설사가 공사를 수주하는 룰이다. 그래서 원청 건설사들은 발주처가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다. 

건설사 영업이익률 5년 새 -3%

그렇다면 원청 건설사들이 손실을 볼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입찰단가를 낮출 방법이 얼마든지 있어서다. 표면적으론 공법개발을 통한 기술력 향상, 자재 공급가격 인하, 인건비 인하, 공사기간 단축 등이다.

하지만 공법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연구개발(R&D)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공사비를 줄이는 데 효율적이지 않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주로 원재료값을 낮춘다. 건설현장에 쓰이는 중국산 철근 수입량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건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철근 수입량은 98만9000t으로 전체 철근 수입량(112만t)의 88.3%에 이른다.

건설노동자의 인건비를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건설일용직 노동자는 희생양에 가깝다. 한 건설일용직 노동자는 “임금을 일부러 체불하다가 체불액이 많이 쌓이면 한꺼번에 주기도 하는데, 당연히 줘야 할 돈을 주면서도 선심쓰듯 한다”면서 “일부에선 한꺼번에 체불임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흥정하고 깎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가뜩이나 노동일수가 적으면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임금으로 살아가는데, 그 임금마저 제대로 주지 않고 깎는다는 얘기다.

영업손실폭이 커진 요즘엔 이런 일이 더 심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약 29만명(합법 약 5만명, 불법 약 24만명)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건설일용직을 생업으로 하는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약 84만명(2014년 기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전체의 34.5% 비중이다.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이 비용을 왜 이리 낮추냐고 항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거다.

앞서 언급했듯 건설경기가 당분간 좋아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 경제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내수에 찬바람이 분 지 오래기 때문이다. 지난해 규제를 그렇게 풀었음에도 살아나지 않았던 부동산 경기가 이제 와서 확 좋아질리도 만무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삶은 더 피폐해질 지 모른다. 영업손실폭을 줄이기 위해 건설사들은 인건비를 줄이려 들 게 뻔해서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방법은 없을까. 바로 적정임금제의 도입이다. 적정임금제의 골자는 발주자로부터 나오는 인건비의 최저 수준을 법으로 정해놓자는 거다. 여기에 미리 도입된 종합심사낙찰제를 적용하면 건설사가 인건비나 자재비를 깎아 저가수주하는 관행은 사라질 공산이 크다.

적정임금제의 파급효과는 긍정적인 게 상당히 많다. 임금 수준이 정해져 있으면 건설사는 같은 노동자라 해도 상대적으로 더 숙련된 이들을 뽑을 수밖에 없다. 숙련공 한명이 비숙련공 여러 명보다 생산성이 높아서다. 건설사 간 기술경쟁도 시작된다. 숙련공은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서 단박에 구해올 수 없다. 때문에 건설사는 숙련공을 고용할 가능성이 높다. 

적정임금제가 미칠 선순환경제

숙련공이 많을수록 종합심사낙찰제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 건설사가 굳이 값싸다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를 쓸 필요도 없다. 임금이 체불될 일도 없다. 경험치를 쌓아야 하는 건설사가 굳이 하도급을 줄 이유도 없다.

기술력 없는 건설사는 자동적으로 구조조정된다. 임금과 공기가 정해져 있는데, 굳이 공기를 단축해 노동자를 놀릴 건설사도 없다. 젊은이들도 이 시장에 올 수 있고, 노령화된 현장이 바뀐다. 무리한 공기 단축도 없으니 산업재해도 줄어든다. 기술을 토대로 건물을 짓고, 제대로 일정을 맞춰 지을 수 있으니 건물 역시 안전해진다.

건설업계에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20여년 간 국내 건설업계의 문제점을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적정임금제는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전산업에 적용할 수 있다”면서 “우리 경제에 낙수효과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충분히 되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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