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어디로…

▲ 현대상선이 용선료 재계약과 자율협약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현대그룹이 창사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현대그룹을 떠받치고 있던 대들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어서다. 바로 현대상선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과 현대증권 매각 등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산이지만 쉽지 않다. 아무리 막아도 물 샐 구멍이 많아서다.

“재협상을 통해 용선료를 내려 재무구조를 개선하라. 그러면 8000억원의 출자전환을 해주겠다.” 지난 2월 초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현대상선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내린 결론이다. 현대상선은 용선료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해외 선주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자 일부에선 ‘청신호’라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비관적인 분석도 많다. 기업 경영의 관건은 비용 대비 효과의 극대화다.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선박과 연료를 싸게 사고, 배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실어야 한다. 운항 횟수를 줄이고 비싼 운임을 받는다. 여기에 물동량까지 늘면 금상첨화다. 문제는 현대상선은 이런 수익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인을 찾자면 IMF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정부는 외환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에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고 지시했다. 돈을 빌려서 배를 들이고, 이 배를 운용해서 돈을 벌어 원리금을 갚던 현대상선에는 돈이 없었다. 결국 배를 팔아서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그러나 몇 년 뒤인 2002년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해운업계에 호황기가 찾아왔을 때 현대상선은 배가 없어 제대로 된 영업을 못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값에 배를 빌려와 영업을 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까지 장기계약까지 맺었다. 몇 년씩 걸려 배를 주문하고 건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는 사이클을 타는 법,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년 5억t가량씩 늘어나던 물량은 더 이상 늘지 않고 정체됐다. 그러자 현대상선은 높은 용선료(배를 빌리는 돈)를 지불하면서도 물량이 늘지 않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기간이 길어질수록 원금과 이자 등 금융비용은 늘어만 갔다. 2009년 이후 현대상선은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배를 팔았다. 안정적인 자금줄이던 LNG사업부도 매각했다. 유동성을 조달하느라 투자는 전혀 하지 못한 셈이다. 최근 5년간 현대상선의 당기순손실 규모가 영업적자의 2~3배에 이를 만큼 큰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 이익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빚부터 갚다 보니 투자도 못하고, 돈도 못 버는 처지에 놓였다는 거다.

영국 조선ㆍ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10년 87억7400만t이었던 전세계 물동량은 2014년 103억2600만t(17.6%)으로, 컨테이너 물동량은 12억8000만t에서 16억2300만t(26.7%)으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현대상선의 시장점유율은 미주→동아시아의 경우 9.5%에서 7.1%로, 동아시아→미주의 경우 7.6%에서 5.5%로 줄었다. 호황기가 찾아와도 현대상선은 큰 수혜를 못 볼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머스크 같은 글로벌 경쟁사들은 달랐다. 불황기에 선박을 싸게 발주해 호황기에 첨단화된 선박으로 선주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최신 선박은 물류비용도 절감해줬다. 불황기만 걷히면 다시 영업을 통해 활기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상선은 또다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채권단은 용선료 계약만 주요 안건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용선료 계약을 다시 하면 선주들의 신뢰를 잃을 거라는 지적이 많다. 낮은 운임도 문제다. 중국발 컨테이너 운임 지수(CCFI)는 2013년말 1066.22(11월 29일 기준)에서 올해 3월 현재 584.01까지 떨어졌다. 최근 한국기업평가에서 보고서를 통해 “용선료 인하는 실적 개선과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면서 “운임이 현재 수준에 머무르거나 더 떨어진다면 용선료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선료를 낮추려는 건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위해서다. 하지만 자율협약은 결국 은행이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일 뿐이다. 배가 없는 해운업자인 현대상선으로선 차후 이자비용만 눈덩이처럼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자 없는 돈으로 현대상선을 살릴 것인지, 계속 수술대에 놓고 산소호흡기만 붙였다 뗐다 할 건지는 현정은 회장과 채권단의 몫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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