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묵인, 소심하거나 비겁하거나
[Economovie] 묵인, 소심하거나 비겁하거나
  •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 호수 184
  • 승인 2016.03.31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검은 사제들 ❷

▲ 김신부는 예수의 부활은 믿으라면서 악마의 존재는 믿지 않는 교회의 이중성에 항의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로마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장미십자회)에서 12악령 중 하나를 퇴치하라는 명을 받고 서울로 급파된 2명의 이탈리아 사제는 서울의 어두운 밤거리를 운전하다 한 여고생을 친다. 새끼돼지에 가뒀던 악령은 여고생에게 옮겨가고, 사제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사실 이탈리아 퇴마 전문 노老사제가 자동차 박물관에 있을 법한 매그너스 승용차를 타고 서울 거리를 달릴 때부터 이미 불길했다.

영화제작비 절감 차원인지 한국영화에서 등장인물이 고물차를 몰고 나타나면 거의 예외 없이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한국의 여고생에게 악령이 옮겨가면서 결국 구마驅魔(exorcism) 임무는 서울의 김신부(김윤석)에게 돌아간다. 한국가톨릭의 본산 명동성당의 어느 어두운 방, 김신부를 가운데 두고 주교(박웅)와 수도원장(남일우) 등 고위사제들의 회의가 열린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인간의 빛나는 지성과 이성’으로 완성된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와 수도원장은 미몽迷夢과 비합리성의 상징과도 같은 구마의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교회 사제들이 무당 굿판과 같은 구마의식을 한다면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찝찝하기 그지없다. 주교와 수도원장의 말을 듣고 있던 김신부는 교회의 이중성을 조롱한다.

사실 배우 김윤석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는 냉소적이고 삐딱한 이단아다. 형사로 등장해도 삐딱함 때문에 조직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퇴출당하고, 일반인으로 등장해도 사회를 향해 구시렁거린다. 심지어 타짜로 등장해도 타짜의 정형에서 벗어난 삐딱한 타짜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 등장한 사제 김윤석도 사제 서품 취소감으로 등장한다. 김신부는 동정녀 마리아와 예수의 부활이라는 ‘비과학성’을 믿거나 믿으라고 하는 교회가 악마의 존재라는 또 다른 ‘비과학적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중성에 ‘김윤석스럽게’ 툴툴거리며 항의한다.

김신부의 툴툴거림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내로남불주의(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대한 문제제기로 들린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기 짝이 없다. 나의 믿음은 다소 비과학적이라도 괜찮지만 남의 믿음은 철저하게 실증적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아무리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과 행위도 나의 것이면 ‘인간의 빛나는 이성과 지성’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남의 것이면 미몽과 미신으로 치부된다.

▲ 교회가 구마의식을 비공식적으로 허가한 건 책임은 지지 않고, 공은 챙기겠다는 뜻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과거 한 연구소에서 ‘교통질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70% 이상의 응답자들이 ‘나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데 남들은 안 지킨다’고 답했다. 나의 위반은 사소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관대하게 합리화되지만, 남의 위반은 분노와 응징의 대상이다. 김신부의 이유 있는 항의에 주교는 침착하고도 현실적인 결론을 내린다.

구마의식을 비공식적으로 허가한 것이다. ‘공식 허가가 아니다’는 점을 김신부에게 거듭 강조하면서 주교는 자리를 뜬다. 그렇다면 ‘구마의식을 비공식적으로 허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인간의 빛나는 지성과 이성으로 무장했다는 교회의 명분도 지키고, 악령에게 고통 받는 한 여고생의 구원이라는 사명도 소홀히 하지 않는 처방이다.

이런 ‘비공식적 허가’는 곧 ‘묵인默認’이다. 만약 여고생이 치유된다면 구마의식이 아닌 교회의 기도의 힘이었다고 포장될 것이다. 반대로 구마의식의 과정이나 결과가 말썽이 되면 교회라는 도마뱀은 ‘몰랐다’는 공식입장 발표와 함께 김신부라는 꼬리 하나를 자르면 그만이다. 주교의 ‘비공식적 허가’와 ‘묵인’은 ‘말썽거리를 말썽 없이 처리하라’는 지시와 다름없다. 제아무리 말썽거리도 말썽 없이 처리하면 문제가 안 되고, 아무리 말썽 없는 일도 말썽이 되면 문제가 된다.

정부든 정당이든 기업이든 지금 이 시간에도 ‘비공식적 허가’와 ‘묵인’ 속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말썽 많은 일을 말썽 없이 처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공功은 누구에게 돌아가고, 책임은 누구의 ‘개인적 일탈’로 돌릴 것인가.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20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