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검은 사제들 ❸

▲ 김신부 외에 다른 사제들은 악마의 존재에 회의적이고 구마읫식을 적극적으로 돕지도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학장신부(김의성)는 신학대학생 최부제(강동원)를 구마驅魔의식의 부사제로 차출해 파견한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최부제가 보조사제로 선발된 이유는 그가 신학대학에서 가장 불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오히려 혹시라도 최부제가 김신부(김윤석)의 구마의식을 열심히 보조할까봐 걱정한다. 최부제 역시 구마의식에 아무런 흥미나 사명감도 없다. 단지 교황 방문을 앞두고 예정된 합창 연습에서 빼준다는 거래조건에 구미가 당겼을 뿐이다.

주교(박웅)나 수도원장(남일우), 몬시뇰(손종학), 그리고 학장신부까지 고위 사제들은 악마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악마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굳이 그것을 밝히길 꺼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단지 로마가톨릭 본부 교회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워 마지못해 움직일 뿐이다. 이들은 왜 이토록 악마의 존재에 회의적이고 구마의식에 미온적일까.

이 질문의 답은 아마도 영화 도입부, 두 이탈리아 사제가 고뇌 속에 나누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젊은 이탈리아 사제가 노老사제에게 묻는다. “악마는 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가?” 노사제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이 신神을 믿기 때문이다.”

노사제의 말을 음미하고 재해석해보면, 악마가 그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은 신이라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므로 악마는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다는 말이 된다. 보이는 건 두렵지 않다. 공포의 대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체를 알면 대처법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은 어찌해 볼 수 없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둠은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대낮이나 환한 불빛 아래 촬영되는 공포영화는 없다.

동양에서 용龍은 엄청난 힘(권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서양의 용에 해당하는 헤게몬(hegemon)을 봤다는 사람도 없다. 용과 헤게몬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기 때문에 어디에든 있을 수 있지만 대처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더 두렵다. 죽음 너머 세상도 완전한 어둠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거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 악마와 신에 대한 두려움도 이와 다르지 않다.

▲ 영화 ‘검은 사제들’의 도입부에서 이탈리아 노사제는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이 신을 믿기 때문에 악마는 모습을 감주고 있다”고 말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두려움으로부터의 도피’ 욕구는 모든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행위 동기動機다. 빈곤이 두려우면 돈을 벌려 하고, 지배당하는 게 두려우면 권력과 지위를 얻으려 한다. 두려움이 강할수록 도피노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해진다. 가족을 버리고 양심과 영혼까지 팔기도 한다. 죽음 너머의 지옥불이 두려우면 구원을 약속하는 어느 것에라도 매달린다. 전 재산을 털어 미심쩍은 ‘면죄부’를 사기도 한다.

사제에게 있어 악마는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악마로부터의 보호와 구원을 약속하는 교회를 찾는다. 혹시 존재하지 않더라도 존재한다고 가르쳐야만 한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도 사라진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남’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적과의 동침’이거나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악마의 존재를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밝혀내서는 안 된다.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존재가 규명되지 않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어떤 것에든 편리하게 ‘악마’의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돈 많은 과부에게 ‘마녀’의 이름표를 붙여 ‘사냥’하고 불태워 죽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이념논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좌파든 우파든 상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키워 자신들의 존재기반을 만들어가는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 살아간다. 서로가 상대는 악마이고 자신은 교회다. 서로가 서로에게 실체도 불분명한 ‘빨갱이’ ‘종북’ ‘친일파’ ‘수구꼴통’의 이름표를 붙이기에 분주하다. 마치 악마의 이름표처럼 말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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