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지지층을 향한 무성의한 약속

선거철만 되면 노인 대책이 줄을 잇는다. 이번 총선에서도 노인 관련 공약은 쏟아졌다.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건 주요 4당의 핵심 공약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이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돈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방법론은 어디에도 없다. 선거철만 지나면 그 많던 노인 공약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주요 정당 노인분야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사진=뉴시스]

초고령화 사회가 임박했다는 분석은 거짓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15세~64세)가 감소한다. 가뜩이나 65세 이상 노인(약 662만4120명·2015년 기준)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의 문턱에 서 있다.

더 큰 문제는 노인 중 절반이 가난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 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12.6%)보다 37%포인트나 높다. 가처분 소득(소비·저축할 수 있는 소득)이 최저 생계비 미만인 절대 빈곤율(2012년)은 노인 인구의 34.8%에 이른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를 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주요 4개 정당(새누리당·더불어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이 ‘노인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쏟아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4개 정당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공약은 ‘노인 일자리 창출’이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일자리 매년 10만개씩 확대 공급’ ‘노인 일자리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시군구에 어르신 일자리 전담기관 확대’ 등 인프라 구축 관련 정책을 집중적으로 제시했다.

야3당의 일자리 관련 공약에는 수당 인상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일자리 참여 수당을 현행 20만원에서 4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일자리 수당을 단계적 40만원까지 확대’할 것을 공약했다. ‘노인 일자리 확대·유지를 위해 최저임금수준의 사회보험료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수당 확대에 관한 내용을 따로 제시하지 않은 정의당은 공약을 통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고, 이를 공공부문 시중노임단가에 전면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기초연금’ 관련 공약에서도 대립했다. 새누리당은 기초연금 관련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반면 야3당은 한목소리로 ‘차등지원을 없애고 보편적으로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의 기초연금 차등지급 기준을 없애고 모든 노인에게 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당은 차등지급 내용인 ‘기초생활 수급자와 국민연금 수급자에 대한 기초연금 감액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차등 없이 20만원을 지급하고 단계적으로 30만원까지 액수를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흥미롭게도 ‘기초연금 20만원의 보편적 지급’은 본래 새누리당의 공약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약속해 노인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기초연금 20만원의 보편적 지급’이라는 공약을 ‘노인의 70%(소득하위)에게만 지급되며,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만~20만원이 차등 지급된다’는 것으로 수정했고,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다.

최혜지 서울여대(사회복지학) 교수는 “기초연금 보편 적용은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시행해야 할 가장 직접적인 복지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노인 관련 공약은 재원이 있어야 시행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재원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증세를 거부하고 있다. 야3당은 법인세 부활과 부자증세를 주장하지만 시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는 “복지가 필요한 노인층이 오히려 새누리당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며 “새누리당과 야3당 모두 굳이 고심해가며 성의 있는 공약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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