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벼룩시장서 배워라

▲ 스테이블스 마켓은 다양한 하드록 풍의 의류들로 차별화에 성공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상품은 비슷비슷하다. 얼마를 부르든지 가격을 깎으면 깎인다. 제값을 주면 속는 것 같다. 특별한 문화나 정체성은 찾아볼 수 없다. 운영은 상인 중심이다. 바로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모습이다. 반면 영국 런던의 벼룩시장은 다르다.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정체성이 확실하며, 운영은 고객 중심이다. 당신이 고객이라면 어떤 시장을 가겠는가.

대형마트들이 전통시장 상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통시장들이 대형마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따져 보면 차별화에 실패한 전통시장의 탓도 분명히 있다. 사업차 영국을 갔을 때 둘러본 런던의 벼룩시장은 그런 면에서 확실한 경쟁력이 있었다. 그곳의 대형마트나 대형슈퍼마켓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특색 있는 제품과 볼거리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런던의 벼룩시장은 단순히 쓰던 물건을 모아놓고 내다파는 우리나라 벼룩시장과 완전히 다르다. 유럽의 전통만큼 독특하고 고전적인 문화가 살아 숨 쉰다. 런던 벼룩시장을 통해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런던에는 유명한 벼룩시장이 많다. 스피털필즈 마켓, 캠든 마켓, 브릭레인 마켓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벼룩시장은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마켓도 대형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공세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벼룩시장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차별화에 있다.

이곳에는 동화책에 나올 법한 골동품들이 장장 2㎞에 걸쳐 빼곡히 쌓여 있다. 은이나 금으로 만든 세공품, 앤티크 소품, 각종 액세서리, 클래식 자동차 관련 제품, 독특한 디자인의 구식 카메라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먹거리도 풍부하다.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한 집 건너 나오는 명동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전통시장만의 체험을 파는 것도 독특하다. 덕분에 매주 토요일이면 전 세계의 수많은 골동품 딜러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어 방문객도 즐길 거리도 절정을 이룬다. 즉흥적인 소규모 거리 공연이 열려 눈과 귀까지 즐겁다. 유럽 전역의 유명 예술가나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포토벨로 마켓은 단지 제품을 사고파는 시장으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자극하고 영감을 제공하는 ‘아이디어 창고’로 자리를 잡고 있다.

포토벨로 마켓이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영화 마케팅이다. 영화 ‘노팅힐(Notting Hillㆍ1999년)’ 속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만나고 사랑을 속삭이는 무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포토벨로 마켓이다. 영화 속에서 휴 그랜트가 운영하던 서점 ‘더 트래블 북 숍(The Travel Book Shop)’은 그중에서도 인기가 높다.

영화 한편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포토벨로 마켓도 런던의 필수 관광코스로 떠오른 거다. 요즘 한국영화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투자 규모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벤치마킹할 수 있을 듯하다. 예컨대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영화에 시골의 5일장 혹은 경쟁력 있는 우리네 전통시장을 배경 장면으로 삽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화를 파는 런던 벼룩시장

‘캠든 마켓(Camden Market)’도 벤치마킹할 만하다. 캠든 마켓은 리전트 운하(Regent's Canel) 주변에 늘어선 작은 노점상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형성된 시장이다. 일반 의류와 액세서리를 주로 파는 캠든 록 마켓(Camden Lock Market), 고스ㆍ펑크 등 하드록풍 의류와 빈티지 의류를 전문으로 파는 스테이블스 마켓(Stables Market), 남미와 인도풍 의류를 파는 캠든 록 빌리지(Camden Lock Village) 등 5~6개의 마켓이 한데 모여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대규모 시장이 유명 관광지로 떠오른 이유는 딱 하나다. 독특하고 기괴한 제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캠든 마켓이 펑크족의 발상지로 명성을 떨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특한 콘셉트를 오랫동안 유지하면 상권이 발달하고 소비자와 관광객이 찾아오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영국 런던 북서지역에 위치해 있는 해로(Harrow) 시장도 본받을 만한 사례다. 이곳은 대부분 퇴근이 늦는 지역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개점시간과 폐점시간을 늦춘 거다. 늦은 밤 시간에 할인행사나 특별 이벤트를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독특하다. 고객이 부담 없이 쇼핑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을 적극 창출하고 있다.

▲ 영국 런던의 벼룩시장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사람들이 넘쳐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은 런던의 벼룩시장들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바꿔야 할까. 첫째, 우리나라 도심 속 전통시장이나 풍물시장은 외부와의 경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노점상을 단속하고 시장 골목 외에는 영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은 그렇게 자로 잰 듯 정확히 끊어지는 게 아니다. 전통시장을 살리려면 각종 규제와 제약을 풀어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 상인들 역시 기득권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양한 소매상이나 노점상들이 시장 주변으로 결집되는 걸 환영해 줄 필요가 있다. 특히 젊은 상인들을 적극 영입해서 젊은 고객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의 전통시장들은 지나치게 식품과 의류 위주의 상품 공급에 한정돼 볼거리가 다양하지 못하다. 런던의 벼룩시장처럼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관광형 시장(물론 모든 전통시장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을 목표에 두고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장별로 특색 있는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는 쇼핑품목과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대형마트에 없는 건 바로 스토리

셋째, 가격 이외의 경쟁적 요소가 필요하다. 런던의 벼룩시장은 절대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 값을 깎아주지 않는 대신 상인들은 각 상품들에 얽힌 놀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당장의 할인 혜택보다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값진 스토리텔링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거다. 물건 값을 흥정하지 않으면 마치 속고 사는 것 같은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판매방식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장은 사람들의 생활과 활력이 모여드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문화와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아무리 깨끗하고 편리하다 한들 이런 장점은 결코 제공할 수 없다. 전통시장의 활성화는 단지 영세 상인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즐겁고 인정이 피어나는 도시 생활을 위해서도 전통시장의 육성과 발전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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