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장 살리는 비법

▲ 적자생존이라는 시장논리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죽어가는 걸 방치한다면 한국을 찾는 관광객은 결국 줄어들 것이다.[사진=뉴시스]
체급이 사라진 지 오래다. 힘이 있든 없든 자본이 크든 작든 ‘작은 시장’을 두고 전투를 벌인다. 한국 시장의 슬픈 현주소다. 약자는 시장에서 밀려나고, 강자는 기득권을 거머쥔다. 우리의 전통시장, 동네 슈퍼마켓, 지하철역 상권은 그렇게 명맥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이 살길,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세계 도시엔 벤치마킹할 게 있을까.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국민가수 조용필이 1991년 발표한 노래 ‘꿈’은 이렇게 시작한다. 실제로 부푼 꿈을 안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든다. 그렇다면 ‘꿈’이 발표된 지 25년이 훌쩍 흐른 지금도 도시는 ‘핫플레이스(hot place)’일까. 다음 통계를 보자.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살고 그 수는 63억명일 것이다(UNㆍ 2009). 2030년 도시 인구는 중국 10억명, 인도 5억9000만명이 될 것이다. 현재 유럽의 도시 인구는 5억3300만명이다(맥킨지ㆍ UNㆍ2009 ~2010).

2030년이 되면 1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가 중국에선 221개로, 인도에선 68개로 늘어날 것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유럽에는 이런 규모의 도시가 35개 있다. 이 기간 4억명의 중국인과 2억1500만명의 인도인이 도시로 이동할 것이다. 미국과 브라질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다. 단 100개의 도시가 세계 경제의 30%를 차지하고 거의 모든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수도들이 수백년까지는 아니어도 수십년에 걸쳐 자금과 지식, 안정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벌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포린 팔러시ㆍ 2010).

트렌드 급변하는 도시 속 시장

네트워크가 많고 기회가 풍부하며 매우 생산적이고 소비적인 거대 중심지들은 자석처럼 인재를 흡수하고 혁신을 뿜어내고 있다. 홍콩의 연간 관광객은 인도 전체의 관광객 수보다 많다. 도쿄와 뉴욕의 국내총생산(GDP)은 캐나다나 스페인과 비슷하고, 런던의 GDP는 스웨덴이나 스위스보다 높다. 파리ㆍ리스본ㆍ부다페스트ㆍ서울과 같은 수도들은 경제 규모가 자국 경제의 25% 이상을 차지한다(UN해비탯ㆍ2010).


그렇다. 도시는 오늘도 커지고 있다. 영리하고 야심만만한 사람들이 도시를 향해 줄을 잇고, 경쟁력이 있는 사람과 조직이 이곳에서 경합을 벌인다. 그 때문인지 도시 트렌드는 변화무쌍하고, 이런 트렌드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생존할 수도, 죽음의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 필자가 한 손에는 캠코더를, 다른 손에는 메모장을 들고 세계의 도시들을 수십년 동안 찾아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의 도시 속에는 트렌드를 좇는 아이템과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그 가운데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요소들이 많아서다.

자! 이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해보자. 글로벌 불황이 엄습한 내수시장은 어둡고 음침하다. 그래서 체급을 가리지 않은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대형 유통채널과 전통시장, 편의점과 동네 슈퍼마켓, 초현대식 쇼핑 스트리트와 지하철 상가가 경쟁하는 식이다. 당연히 힘과 자본을 가진 대형 유통채널, 편의점, 초현대식 쇼핑 스트리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고, 그 때문에 전통시장, 동네 슈퍼마켓, 지하철 상가는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하지만 힘과 자본을 가진 것들만 도시에 있어선 곤란하다. 그건 균형감 있는 성장이 아니다. 전통시장, 동네 슈퍼마켓 등도 작지만 알찬 경쟁력을 뽐내야 도시 생태계가 진화하고 균형이 잡힌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 도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대형 유통채널의 진격에 입지가 좁아진 전통시장의 해법은 영국 런던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의 벼룩시장은 단순한 물건을 모아놓고 내다파는 우리나라 벼룩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럽의 유구한 전통만큼 독특하고 고전적인 문화가 살아 숨 쉰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벼룩시장은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은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골동품으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 전통시장이 벤치마킹할 만한 장점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편의점에 밀려난 동네 슈퍼마켓의 살길도 유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유럽의 소매점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동네 곳곳에 마트도, 편의점도 있지만 소매점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 지역 특성에 맞춰 다양하게 변신하면서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하고 있어서다. 유럽 소매점들이 최근 지역 농가農家와의 협업을 통해 ‘로컬푸드(local food)’를 판매하고 있는 건 대표적인 차별화 포인트로 손꼽힌다.

벤치마킹 후 현지화 노력해야

미그로스(migros)와 쿱(coop)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의 생활협동조합(생협)도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스위스 국민의 절반 이상인 미그로스ㆍ쿱 조합원이 시장에 적극 참여하면서 소매문화와 소매점 활성화를 선도하고 있어서다.

‘죽음의 바다’로 불리는 지하철 상권도 해외에서 ‘생존 DNA’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우에노上野역은 좋은 예다. 이 역사驛舍의 환승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그 옆으로 쇼핑몰이 펼쳐진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에키나카(역내)’라고 부르는데, 단순히 역사 안에 있는 매점이 아니다. 개찰구 안이나 환승 공간에까지 들어선 점포를 뜻하는 신조어다. 적자에 허덕이던 일본의 철도회사들이 고안해낸 생존 전략이다. 규제를 깨고 문턱을 낮춰 새로운 상권을 만든 거다. 

물론 다른 나라의 사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맞게 현지화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빨리 적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세상의 흐름을 남보다 빨리 읽는 건 무척이나 중요하다. 불황 중에도, 트렌드가 급변하는 와중에도 버텨내는 시장이 있다면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곳이 지역민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몰려드는 ‘핫시티’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우리가 세계 도시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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