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지하철역서 배운다

▲ 일본의 ‘에키나와’는 적자에 시달리던 철도회사들이 고안했지만, 상인과 고객도 이득을 봤다.[사진=뉴시스]
일본의 지하철역에서는 환승계단을 올라가다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미국의 지하철역에서는 아침에 세탁물을 맡겼다가 퇴근할 때 찾아올 수 있다. 인기도 많고 장사도 잘 된다. 다 죽어가는 우리나라 지하철역 상권과는 대조적이다. 무엇을 벤치마킹해야 지하철역 상권에 활력이 감돌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장사가 잘 된다’는 속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지하철역은 황금어장이나 다름없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1일 지하철 이용객 수는 2014년 기준 534만명이다. 여기에 수도권 이용객까지 합하면 족히 1000만명은 될 것으로 보인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거대 시장이 땅속에서 잠자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시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흉물로 방치된 지하철역 내 점포들은 한둘이 아니고,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만성적자라며 불만을 내놓는다. 가끔은 전철요금을 올리기 위해 시민들을 볼모로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지하철역을 제대로 된 어장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공 사례도 많다. 지하철역을 잘 활용하고 있는 곳은 일본이 대표적이다. 특히 우에노上野역 환승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그 옆으로 쇼핑몰이 펼쳐진다. 회전초밥집, 피자레스토랑, 도시락가게, 커피숍, 대형 음반매장, 화장품매장, 장난감가게, 양복점 등 80여개의 점포가 줄 지어 있다. 이런 점포들은 ‘에키나카(역내)’라고 불린다. 단순히 역사驛舍 안에 위치한 매점이 아니라 개찰구 안이나 환승 공간에까지 들어선 점포를 뜻하는 신조어다. 지하철 이용객 감소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의 철도회사들이 고안해낸 생존 전략이다.

미국도 이런 유형의 지하철역 내 점포가 있다. 그 가운데 뉴욕 기차역 내 세탁소는 굉장히 유명하다. 출근할 때 수선할 옷을 맡겼다가 퇴근할 때 찾아가는 식이다. 지하철역이나 철도역 내에 세탁물을 맡기고 찾을 수 있는 별도의 장소가 마련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인 영국 런던 지하철(Tube)역에도 조만간 유통업체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주로 식료품)을 역에서 수령해갈 수 있도록 하려는 거다.
 
지하철역 내 점포의 장점은 한둘이 아니다. 일단 자신이 원한다면 전철이 끊길 때까지 영업할 수 있다. 날씨 제약도 훨씬 적다. 또한 지하철역 내 점포는 바쁜 직장인들에게 쇼핑 시간을 제공해줄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만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구매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 지하철역 내 점포 아이템으로는 팬시점이나 과자점에서부터 출퇴근 시간을 공략한 각종 렌털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상권으로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몇가지만 유념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첫째,지하철역 내 환기시설과 조명의 밝기 등을 개선해야 한다. 둘째, 유통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각 역마다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셉트를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전철 운영사가 직접 사업을 운영한다면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입찰에 붙여 운영권을 맡기는 방식보다는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게 좋겠다. 그래야 사업주체가 지하철 개찰구 입구와 환승 통로까지 이용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등 적극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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