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연관성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

▲ 사업주의 강요 없이 과음을 했다가 사고가 났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어렵다.[사진=뉴시스]
일터는 안전해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 수행 중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업무로 봐야 하느냐다. 회식 과정에서 음주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회사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근로자나 그 가족의 생활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그런 근로자에게 요양급여 등의 보상을 해주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가 통상적인 업무에 종사하다가 재해를 당했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데 무리는 없다. 하지만 통상적 업무 외 행사나 모임에 참가했다가 재해를 당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떤 요건인지 등은 의문이다.

대법원의 입장은 이렇다.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 목적, 내용, 참가인원과 강제성 여부, 운영방법, 비용부담 등의 사정들에 비춰 사회통념상 그 행사나 모임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라면 통상적 업무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또 덧붙였다. “근로자가 그와 같은 행사나 모임의 순리적 경로를 일탈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회식 자리의 음주가 원인이 돼 발생한 재해는 어떨까. 사례를 보자. A씨는 B사의 상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팀장을 포함한 팀원 30명이 음식점에서 저녁 회식을 했다. 2시간가량의 1차 회식을 마친 후 팀장을 포함해 12명이 바로 옆 건물 4층에 있는 노래연습장으로 자리를 옮겨 2차 회식을 했다. A씨는 노래연습장으로 옮긴 직후 화장실을 찾는 과정에서 커다란 창문을 화장실 문으로 착각하고 나갔다가 건물 밖으로 추락, 큰 부상을 입었다.

A씨는 만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팀장이 직원들에게 술잔을 돌리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직원에게 술 마시기를 권하지는 않았다. 팀장은 주량이 소주 반병 정도였지만 당시엔 맥주 한잔가량을 마셨다. 팀장은 또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A씨가 돌아오지 않자 다른 직원에게 A씨를 찾아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A씨의 부상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까.

먼저 대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을 보자. “업무와 과음,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다만 대법원은 업무와 과음, 재해 사이에 형성된 인과관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업주가 음주를 권유하거나 사실상 강요했는지 아니면 음주가 근로자 본인의 판단과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재해를 당한 근로자 외에 다른 근로자들이 마신 술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그 재해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회식 또는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발생한 재해는 아닌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가 참여한 회식은 사업주 측의 주최로 이뤄졌다. 하지만 A씨는 사업주의 강요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과음을 했다. 또한 회식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이라고 보기 힘든 사고를 당했다. 이에 따라 A씨가 입은 부상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대법원의 최종 의견이기도 하다. A씨로선 더 큰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위안할 수밖에 없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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