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경고 시그널

기업의 주가는 실적에 연동하게 마련이다.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는 당연히 춤을 춘다. 그런데 식품업계의 요즘 주가가 이상하다. 실적과 주가가 ‘역(-)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신제품을 쏟아내도, 실적 개선을 알려도 증시는 좀처럼 응답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 지난해 수익이 증가한 몇몇 식품회사의 주가가 올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몇년간 미디어를 휩쓴 ‘쿡방·집밥 열풍’의 최대 수혜자는 식품업계였다. 레토르트·가정간편식·라면 등 외식을 대체할 수 있는 식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품업계에 주식시장은 추파를 던졌고, 음식료 주가는 ‘상승곡선’으로 깨알같이 응답했다.

주가상승을 이끈 원동력은 실적이었다.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품업체 대부분의 실적은 개선됐다. 종합식품회사 오뚜기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4.9%, 12.4% 늘어난 1조8297억원, 1186억원을 기록했다. 농심의 실적도 크게 증가했다. 2015년 매출액은 1조8786억원으로 전년 대비 4.3% 늘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8.5% 증가한 1053억원을 달성했다. 오리온의 지난해 영업이익 역시 전년(447억원) 대비 112.7% 늘어난 951억원을 찍었다.

식품업계의 기세는 올해도 여전하다. 각 업체들이 신제품을 쏟아내자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에 더 센 불이 붙고 있다. 라면시장에선 지난해 출시된 농심 ‘짜왕’과 오뚜기 ‘진짬뽕’이 중화풍 라면 전성시대를 열며 매출 순위 상위권을 장악했다. 과자시장에선 오리온이 ‘초코파이 바나나’를 론칭, 출시 3주 만에 1000만개를 판매하며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고 이상하다. 식품업계의 뜨거운 기세에 주식시장이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주요 식품업체의 주가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최고가 대비 낙폭도 큰 편이다.  올 1월 22일 142만5000원으로 최고가를 찍은 오뚜기 주가는 지난 6일 94만2000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두달 만에 33.9%나 하락한 셈이다. 농심 주가도 지난 1월 21일 53만4000원을 기록했지만 지난 6일 39만3500원에 마감, 26.3%나 떨어졌다. 오리온의 주가는 지난해 5월 20일 최고가인 137만4000원을 찍은 뒤 등락을 거듭하다가 지난 6일 94만2000원까지 떨어졌다. 최고가 대비 31.0%, 올 1월 6일(120만원) 대비 21.5% 하락한 수치다.

라면·스낵 등 식품 분야에서 스테디셀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실적까지 증가한 이들 회사의 주가가 곤두박질친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시들해진 쿡방·집밥 인기, PB(자체상표)상품 확대, 저가경쟁 등을 부진의 요인으로 꼽고 있다.
 
소비자 관심, 쿡방→DIY 
   
무엇보다 식품업계를 붕 띄운 ‘쿡방·집밥’ 열풍이 예년만 못하다. ‘쿡방·집밥’을 향했던 소비자의 관심이 올해 들어 ‘셀프DIY’나 ‘드라마’로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 PB제품의 인기도 식품업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예컨대 이마트 ‘노브랜드’, 신세계 프리미엄 가정간편식 ‘피코크’, 편의점 도시락 등은 소비자의 이목을 끌면서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식품업계의 판로販路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치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식품업체와 유통업체가 맞대결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부진에 빠질 수 있다”면서 “이런 부진이 자칫 마케팅 비용의 상승을 부추기면 식품업체의 수익성은 결과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저가경쟁도 식품업계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식품업계는 그동안 원자재 가격을 빌미로 가격을 올려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적이 개선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마트와 쿠팡의 저가경쟁 이후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식품업계로선 맘놓고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원료값이 계속 오르면 식품업계의 수익성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식품업체의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잘 팔리는 제품을 더 잘 팔면 그만”이라면서 “주가하락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도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신제품을 개발하면 주가는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했다.

▲ 유통업체의 PB상품까지 가세한 식품 시장의 경쟁심화가 우려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식품업계가 침체기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식품업체의 실적개선에도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간단하게 봐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송치호 애널리스트는 “식품업체들의 주가하락이 단기에 끝날 것이라고 낙관하기 힘들다”고 꼬집은 뒤 “식품업계 부진과 수익 감소 우려가 짙어지는 추세라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쿡방의 열풍은 끝났고, 식품업계엔 때아닌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다. 쿡방 열풍에 호황을 누리던 식품업계도 새로운 생태계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다. 실적개선에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는 건, 일종의 경고 시그널일지 모른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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