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툭하면 진영논리 원융사상 아쉽다
[Economovie] 툭하면 진영논리 원융사상 아쉽다
  •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 호수 186
  • 승인 2016.04.1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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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검은 사제들 ❹

▲ 서울 한복판의 어느 건물에서 구마의식이 펼쳐지지만, 공간은 철저히 빛과 어둠으로 나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검은 사제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채워져 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처럼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진다. 태초에 세상은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 찬 것이었고,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비로소 빛이 있게 된(deus dixtique fiat lux et facta est lux)’ 곳이다. 어둠도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빛도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미국의 대표적인 종교학자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는 인간조차 ‘빛의 자식(children of light)’과 ‘어둠의 자식(children of Darkness)’으로 과감하게 나눈다. 영화는 끊임없이 ‘빛’과 ‘어둠’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악마가 깃든 영신(박소담)을 상대로 구마의식이 펼쳐지는 서울 도심 한복판의 야경은 빛으로 휘황찬란하다. 모든 것이 반듯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단정하며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빛 가운데 모두 ‘빛의 자식’들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두어 걸음만 뒷골목으로 옮기면 어둠 속 모든 것이 너절하고 음습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퇴락하고 무질서한 어두운 건물 한구석에선 선지가 떨어지는 소 대가리를 등에 진 무당이 끔찍한 굿판을 벌인다. 지옥도가 따로 없는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빛으로 가득 찬 대로를 지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뒤틀리고 기괴한 ‘어둠의 자식들’이다.

화면 속 김신부(김윤석)의 시선은 뒷골목의 어둠 속에서 빛으로 가득 찬 반듯한 번화가로 이어진다. 마치 번화가를 동경하는 것처럼 어둠과 대비된다. 어둠의 끝에서 저 멀리 보이는 빛의 세계와 ‘빛의 자식들’에 대한 동경과 갈구는 더욱 선명하고 갈급하다. 영화 제작배급사가 CJ 엔터테인먼트여서인지 빛 가운데 CJ가 운영하는 올리브영 매장이 천국의 보좌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며 자리 잡고 있다. 가공할 만한 제작사의 힘이다.

휘황찬란한 대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어둠’이 없고, 뒷골목의 어둠 속에는 한 줄기 ‘빛’도 없다. ‘천국’과 ‘지옥’과도 같은 이분법적 구도다. 이분법적 세계관은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한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가 나눠지듯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천국’과 ‘지옥’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두 세계는 융합融合이나 혼재混在, 소통疏通을 허락하지 않는 대비와 대결뿐이다.

▲ 모든 걸 빛과 어둠으로 나누고 대립하는 게 우리의 전통 사상은 아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빛이 쏟아지는 곳에는 오로지 ‘빛의 자식들’뿐이고, 어두운 뒷골목에는 ‘어둠의 자식들’뿐이다. 빛의 스펙트럼(spectrum)도 인정하지 않는다. 흰색에는 순백만 존재하고 검은 것은 모두 완전한 검정(solid black)이다. 회색은 비겁한 기회주의일 뿐이다. 두 세계는 무 자르듯 나뉘어 빛의 세계는 어둠의 세력의 침범을 막아야만 하고 어둠의 세계를 정벌하고 몰아내야만 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소위 ‘진영논리’가 이렇다.

우리를 갈라놓고 적개심을 부추기는 ‘진영논리’는 우리 고유의 사상체계 속 DNA는 아닌 듯하다. 한국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사상은 원융圓融의 정신과 회통會通의 정신이 아닐까. 원융사상은 모든 사상을 분리해 다름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엮는 교리통합론의 전통이다. 회통사상은 원효불교의 핵심인 화쟁사상和諍思想과 더불어 특정한 믿음의 ‘진영’이나 경전經典에 얽매이지 않았던 통불교通佛敎의 특징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원효의 화쟁사상에서 ‘화’는 화해ㆍ화합ㆍ조화를, ‘쟁’은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믿음을 뜻한다. 곧 회통이나 화쟁은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믿음과 이론의 화해와 화합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빛’과 ‘어둠’, ‘천사’와 ‘악마’와 같은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로만 파악하려 드는 서구 사조가 횡행하는 이 시대, 우리 고유의 원융과 회통의 정신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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