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역시 경제다

▲ 이번 총선에서 민심은 경제를 회생시켜 민생, 먹고사는 문제 좀 해결해 달라면서 여당에 회초리를 들었다.[사진=뉴시스]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지난 2월 말 새누리당 대표실 벽면을 장식했던 문구다. 그전에 붙어 있던 ‘경제를 살리는 개혁: 미래를 구하는 개혁’이란 문구를 떼어내고 페이스북을 통해 공모한 누리꾼들의 쓴소리로 대체했다. 새누리당과 정치권에 대한 젊은층의 꾸지람은 날카로왔다. “알바도 니들처럼 하면 바로 잘린다” “청년이 티슈도 아니고 왜 선거 때마다 쓰고 버리십니까” “국민 말 좀 들어라”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

최고위원회의가 열릴 때마다 방송을 타고 사진기자들의 표적이 됐지만 배경판 문구는 금세 퇴색했다. ‘진박’ ‘친박’ 대 ‘비박’간 계파 갈등이 노골화하면서 살생부 파동에 특정인 찍어내기 공천, 옥새 파문으로 이어졌다.

대표실 배경판 문구는 보여주기 위한 광고 카피에 그쳤을 뿐 가슴에 새기지도, 실천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많은 후보들이 유권자의 심판으로 ‘잘리고’ 제1당 자리마저 야당에 빼앗기는 등 ‘훅 가고’ 말았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당 체제를 불러온 4ㆍ13 총선 결과는 2030세대의 투표 반란과 중도층의 정부여당 심판으로 요약된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자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다는 2030 N포세대들이 헬조선을 탈출하는 끈을 잡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나와 일해도 벌이가 시원찮은 자영업자와 전통시장 상인들, 애써 저축해도 치솟는 전세 보증금과 월세 대기가 버거워 변두리로 밀려나는 봉급생활자들, 대선 공약으로 약속만 해놓고선 누리과정 예산 하나 책임지고 해결하지 않는 정부에 화가 난 엄마들이 여당 대신 야당을 선택했다.

선거 판세를 좌우한 변수는 결국 민생民生과 직결된 경제 문제였다. 사상 최악인 취업난,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 및 확대되는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비싼 전ㆍ월셋값 등 주거난, 자영업과 전통시장의 몰락, 흙수저론이 상징하는 소득격차와 빈부격차 확대 등 온통 먹고사는 문제인데 살아가는 게 하도 팍팍하니 유권자들이 박근혜 정부와 여당을 심판한 것이다.

총선 블랙홀에 빠져 관심권 밖이었지만 경제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수출이 역대 최장인 16개월 연속 감소세다.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가 받쳐줘야 할 텐데 소비도 기진맥진이다. 급기야 주요 기관들이 잇달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2일 3.2%에서 2.7%로 대폭 낮췄다. 금융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도 14일 2%대 중반으로 하향 조정했다. 당초 3.0%로 전망했던 한국은행도 19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면서 성장률을 낮출 움직임이다.

정부만 홀로 3%대 성장을 고집하며 경기부양 카드를 만지작거리지만 수단이 마땅치 않은데다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리란 보장도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해마다 재정을 확대 집행하고 금리도 낮췄지만, 지난 3년 평균 성장률은 2.9%로 3%에 못 미쳤다. 저성장의 덫은 벗지도 못하면서 국가채무만 역대정부의 몇 배로 불어났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부ㆍ여당은 지난 3년을 처절하게 돌아보는 반성의 토대 위에서 심기일전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부터 달라져야 한다. 군림하며 ‘통치統治’하려 들지 말고 여야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협치協治’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선거에서 이긴 두 야당도 자신들이 잘해서 표를 더 받은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ㆍ여당의 잘못에 따른 반사이익이 크고, 지금의 지지가 지속되리란 보장도 없다. 벌써부터 내년 대선을 향해 달려가는 정치공학적 계산은 삼가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경제이고, 관건은 제대로 된 정책의 실천이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회초리는 경제를 회생시켜 민생, 먹고사는 문제 좀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20대 국회가 열리기 전 여ㆍ야ㆍ정이 한자리에 모여 경제 살리기 대책을 논의하는 협치를 보고 싶다. 참 정치는 민심을 새겨듣고 민생을 챙기는 데서 출발한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이를 소홀히 했다가는 어느 순간 훅 간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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