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갤러리 | 김영란 작가

사람들은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갖는다. 자의든 타의든 한번 택한 길을 운명처럼 살아가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인의 길은 일반인과 다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해서다. 이를테면 예술의 세계는 곧 낯설고 험한 창조의 길이라는 거다.

김영란 작가는 조각 기법에서 새로운 시도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힘이 부쳐서인지 조각의 주재료들을 버리고 무게가 덜 나가는 화선지를 선택했다. 이제 화선지는 그에게 작업의 기본 재료가 됐다. 흙으로 원하는 형태를 부조로 만들고 그 위에 화선지를 여러 겹 붙인다. 동양화에서 그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하는 배접방법이다. 배접과정이 끝나고 건조된 부조화된 화선지에 윤곽을 따라 채식으로 장식한다. 양감으로 조각된 부조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채색은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한복 가운데에서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작가의 정신세계인 숭고한 영혼을 순백색의 종이에 채색하며 자연의 순리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작업으로 보인다. 추웠던 겨울 인고의 뿌리 속에서 봄이 오니 싹이 트고 여름에 줄기를 키워 가을에 꽃을 피우고 홀씨를 대지에 흩날리는 민들레처럼! 아! 아름다운 날 생명의 소중함이여(철학박사 진철문).

양감만 드러낸 화선지 초기의 작업과 달리 최근에는 꽃ㆍ나비ㆍ의자 등에 채색된 형상을 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순리(화분과 꽃)라는 작품은 왠지 불안하고 가냘파 보인다. 고개 숙인 홀로된 꽃은 애처로워 보인다. 끌림(두 마리의 참새와 둥지)은 마치 모녀가 함께 둘만의 공간에서 오손도손 대화하는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끌림(의자와 꽃과 나비)은 작가의 작품 중에 가장 화려하게 채색이 들어간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끌림(의자와 꽃과 나비)은 지금 비록 빈 의자로 남아 있지만 한때는 누군가에게 안락함을 주었던 의자일 것이다. 누군가를 추억하고자 채우지 않고 빈자리로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빈 의자 주변을 꽃과 나비로 장식해 낙원의 공간처럼 화려하게 연출하고 있다. 보는 이가 누군가와의 추억을 새기도록 유도하고 이를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의지로 엿보인다.
김상일 편집위원(바움아트갤러리 대표) webmaster@thescoop.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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