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산지가격 vs 소비자가격 다른 이유

‘939원’. 지난 2월 달걀 10개의 산지 가격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졌다. 농민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유통업체에 달걀을 납품했다. 그런데 대형마트의 소비자 판매가는 그대로다. 유통업체가 더 많은 마진을 챙기려고 소비자 가격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통업체의 욕심에 소비자만 봉이 됐다.

▲ 달걀 산지 가격 하락에도 대형유통업체는 소비자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달걀이 풍년이다. 농장 자동화 시스템의 확산으로 산란계(알을 낳는 닭) 사육 마릿수가 늘어나 달걀 생산량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산란계 마릿수는 총 7017만마리로 전년 동기(6887만마리) 대비 약 1.9% 늘었다. 달걀 생산량도 올 1분기 약 4339만개로 전년 동기(4110만개) 대비 약 5.6% 증가했다.

당연히 산지 가격도 떨어졌다. 농협중앙회 통계를 보면, 올 3월 달걀 산지 가격(특란 10개 기준)은 939원으로 6개월 전인 지난해 9월(1281원)보다 26.7% 하락했다. 그렇다면 소비자 가격도 그만큼 떨어졌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소비자 가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서울시 물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2015년 9월~2016년 2월) 서울 중구 소재 A대형마트의 달걀 판매 가격(특란 10개 기준)은 지난해 12월(2580원)을 제외하고 2700원으로 동일했다. 같은 지역 B대형마트의 달걀 가격도 A대형마트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2700원에 판매되던 달걀은 올 2월 2480원으로 8.8% 하락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달걀 산지 가격이 26.7 %나 떨어진 것과 대조적인 수치다.

문제는 ‘유통마진’에 있다. 대형마트가 유통마진율을 높게 설정한 탓에 산지의 가격하락이 소비자 물가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 1일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가 “대형유통업체가 마진율을 높게 유지하려고 달걀 산지값 하락폭만큼 소비자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달걀 소매단계 유통마진율은 2013년 20.7%에서 올 2월 41.1%로 껑충 뛰었다. 산지 가격이 939원으로 급락한 올 2월엔 소비자 가격의 절반 정도인 48.5%가 유통마진이었다. 이 때문인지 대형마트의 납품 단가 책정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10년간 달걀농장을 운영하며 대형마트에 납품 중인 L씨는 “달걀은 단가 기준이 ‘무게’라서 업체별 납품 단가가 제각각이다”면서 “마트에서 달걀을 15개, 20개씩 묶어서 파는 이유가 단가 비교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황명철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 센터장은 “몇몇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중심으로 유통업계가 구성된 게 문제의 근원”이라며 “생산자 중심의 대안 유통채널을 만들어 강화해야 농민 소득을 보장할 수 있고, 소비자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달걀을 구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달걀 농가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황 센터장은 “일본에서는 산지 가격이 기준 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차액의 9할을 보전하는 ‘달걀격차보전사업’을 실시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제도적 지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생태계를 공정하게 바꾸는 게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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