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한우협동조합의 의미 있는 도전

명품엔 ‘짝퉁’이 들러붙기 일쑤다. 유명세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어서다. 진짜와 가짜를 쉽게 구별할 수 없고,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우시장에 한우는 없고, 수입소와 육우가 판을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우시장을 살릴 방법이 없을까. 완주한우협동조합을 보면 답이 있을지 모른다.

▲ 가짜 한우가 유통되면서 소비자들은 미심쩍은 한우보다 수입산 소고기를 더 많이 찾게 됐다.[사진=뉴시스]
추석과 설 명절이 다가오면 각 지자체는 연례행사처럼 한우의 원산지표기와 축산물이력을 조사한다. 그 결과, 언제나 그렇듯 수입산 혹은 육우를 한우로 둔갑시킨 이들이 무더기로 적발된다. 지난해 9월에는 수입산 쇠고기와 국내산 육우를 한우선물세트로 둔갑시킨 업소 50곳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같은해 10월에는 2013년 3월부터 2년이 넘게 전국 각지에서 저가에 사들인 3등급 한우를 ‘한우 직판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판매해오다 적발됐다. 올해 2월에는 서울에서 수입산 쇠고기 등을 한우로 둔갑시킨 업소 39곳을 적발했다.

이젠 농협도 못 믿는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한우의 등급과 축산물이력을 가장 많이 속여 판매한 곳은 다름 아닌 농협이었다. 한우는 믿을 수도 없고, 가격도 비싼 식품이 돼버린 거다. 소비자들은 “어차피 다 가짜라면 비싼 돈을 주고 한우를 먹을 게 아니라 그냥 속 편하게 수입산을 먹자”면서 돌아섰다.

덕분에 2009년 19만8000t에 불과했던 소고기 수입량은 2015년 28만6000t으로 44.4%나 증가했다.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 한우를 다시 한우시장의 주인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는 걸까. 최근 신뢰가 빠진 한우시장에서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는 ‘완주한우협동조합’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012년 11월 177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한 완주한우협동조합은 전북 완주군의 고산ㆍ비봉ㆍ화산의 3개면에 밀집한 한우농가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이 협동조합에서 사육하는 한우만 해도 약 1만두에 이른다. 농업소득 대비 한우생산소득이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한우가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역 한우농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한우시장의 정상화였다.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완주한우협동조합은 한우시장을 정상화하려면 생산ㆍ도축ㆍ가공ㆍ유통을 모두 담당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협동조합이 생산부터 판매까지 직접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 숙제는 가짜 한우를 없애는 거였다. 회원 중 누군가가 가짜 한우를 내놨다간 시장에서 퇴출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완주한우협동조합은 좋은 틀을 갖고 있다. 180여명의 조합원이 모두 한우협회 완주군지부 소속 회원이기 때문이다.

김규식 완주한우협동조합 상무는 “한우를 키우고, 한우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가들이 굳이 한우 이미지에 타격을 줄 만한 일을 할 리가 없다”면서 “가짜 한우를 파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협동조합이 회원 농가로부터 한우를 받아 직접 도축한다. 그 과정에서 협동조합 이사들이 일일이 한우임을 확인하고 대조하는 작업도 거친다.

직접 생산ㆍ판매하면서 가격 낮춰

둘째 숙제는 한우의 안전한 판매망을 구축하는 거였다. 완주한우협동조합이 ‘고산미소’라는 판매점을 통해 직접 판매를 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로 ‘고산미소’는 완주한우협동조합이 직접 생산한 한우를 유통시키는 매장브랜드다. 김 상무는 “일 평균 3마리 한우가 도축되고 있는데, 이 정도 수준으로는 회원들의 한우를 소진할 수 없다”면서 “최근 ‘고산미소’ 경기 화성점을 추가로 오픈한 것도 회원들의 한우를 소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이 ‘가짜 한우 퇴출’ ‘안전한 판매망’이라는 두가지 숙제를 푸니까 또다른 이점이 생겼다. 한우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된 거다. 사실 한우가 외면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싼 가격도 한몫했다. 가짜 한우가 판친 까닭도 같은 이유에서다. 시중 한우 1등급 등심 1㎏의 가격은 한우가 육우의 2배, 육우가 수입산(프라임급)의 2배다. 수입산 등심이 한우로 둔갑하면 4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솜방망이 처벌이 곁들여져 가짜 시장은 더 커진다. 가짜 한우를 판매해서 얻는 이익이 처벌을 통한 손해보다 크니까 가짜 한우가 넘쳐난다. 한우 가격을 잡는 게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이 사료를 공동구매하면서 사료구입비가 줄어들었다. 생산단가가 낮아진 셈이다. 협동조합 관계자는 “사료 공동구매를 통해 사료 단가가 줄었고, 같은 사료를 먹은 덕분에 균일한 품질의 한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얼마나 낮췄을까. 현재 고산미소 화성점에서는 1등급 한우 등심 600g을 4만원에 판매한다. 전국한우협회가 제공하는 공식 소비자가격(정육점 기준)에 따르면 1등급 한우 등심 600g은 약 4만8000원이다. 고산미소 등심은 공식 소비자가격보다 20% 더 저렴한 셈이다. 식당가격으로 따지면 차이는 더 커진다. 일반 식당에서 1등급 등심인지도 알 수 없는 한우가 100g에 1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지만, 고산미소에서는 1인당 3000원만 더 부담하면 상차림까지 해준다.

▲ 고산미소 화성점에선 진짜 한우를 시중 가격보다 싸게 먹을 수 있다.[사진=완주한우협동조합 제공]
중요한 건 한우가격이 지금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거다. 조영호 완주한우협동조합 이사장은 “비슷한 협동조합이나 영농조합 간 연대를 통해 각종 자재의 공동구매, 공동사업 등을 추진하면 원가를 더 낮출 수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향후 생산자의 최소 생산단가를 보장하고, 한우가격이 좋지 않을 때조차 최소한의 단가를 보전해줄 수 있는 ‘적정가격제’를 도입할 생각이다. 그러면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운영을, 소비자에게는 시장의 흐름을 벗어나 일정한 가격으로 한우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한우에 1.67배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만 아니라면 비싸도 산다는 얘기다. 완주한우협동조합 연매출이 2013년 42억원, 2014년 72억원, 지난해 91억원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 상무는 “고산미소를 찾는 소비자들도 늘 ‘진짜 한우가 맞느냐’고 물어보는데, 한우시장 전체에 불신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라면서 “우리의 작은 노력이 한우의 신뢰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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