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의 배신」

‘하면 된다’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부모 세대의 삶 그 자체였다. 그들은 사회 구조의 문제마저도 개인의 노력으로 끌어안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래서 ‘(노력)하면 된다’는 하나의 신화가 됐고, 부모 세대에게는 일종의 신념체계로 굳어졌다.

그런데 이 신화가 유통기한을 넘긴 듯하다. 직장·가정·관계 등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요건을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 힘든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는 기본적인 삶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노력이 아니라 ‘노오력’해야 한다고 말하며 자조한다. 아울러 ‘헬조선·금수저·흙수저’를 청년 담론의 대표 키워드로 만들며 한국 사회를 ‘노(No)답 사회’라고 조롱한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와 문화학자 엄기호 연구팀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노오력’을 대표 키워드로 잡아 한국 청년 문제를 분석했다. 20~30대 청년 심층 인터뷰, ‘헬조선 포럼’ 등을 진행하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노오력의 배신」에 담았다.

기성 세대는 “왜 분노하지 않느냐” “왜 연애·결혼·출산을 쉽게 포기하느냐”라며 청년 세대를 나무라지만 연구팀은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은 ‘노답 사회’인데, 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 자질과 윤리 문제로 환원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꼬집는다.

연구팀은 또한 “우리나라 청년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답이 없는 나라, 나라를 떠나거나 아니면 남아서 ‘벌레’가 되는 선택만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그 목소리가 ‘노답사회’‘헬조선’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연구팀을 이끈 조 교수는 오늘날의 청년 문제는 지금까지의 무절제·무성찰적인 경제 성장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청년 문제는 미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해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가 제시한 첫째 방법은 ‘듣기’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먼저 귀담아 들어야 그들도 다시 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다. 청년들은 이미 지난 20대 총선에서 부쩍 높아진 투표율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젠 정치권과 우리 사회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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