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도 동의한 구조조정의 길

▲ 해운‧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 전반이 흔들리자 여야 정당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나섰다.[사진=뉴시스]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가 정국의 최대 화두로 급부상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나선 데 이어 당내 전담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야당이 먼저 현안을 치고 나오자 여당인 새누리당도 부랴부랴 합류하며 여ㆍ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대규모 실업 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야당에겐 일종의 금기어였다. 그런데 이번에 야당이 전향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해서다. 실제로 해운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수출한국을 이끌던 핵심산업들이 응급 상황이다.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주력산업 전반이 흔들리는데도 정치적 부담에 구조조정을 미루고, 채권단과 공기업의 낙하산 사장들은 임기 동안 부실을 덮는 데 급급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특히 해운과 조선은 적자 규모가 수조원대다. 영업이익으로 은행 대출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좀비기업)이 2014년 말 기준 3471개로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2만7995개)의 14.4%에 해당한다.

늦었지만 여야 정당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묵은 숙제를 풀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총선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각 당 나름의 포석도 있겠지만, 총선 결과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으로 짜이면서 나타난 이례적 현상이다. 3당 체제의 첫 시험대이자 기업 구조조정의 무대가 여의도로 이동하는 만큼 여정은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과거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사례에서 보듯 근로자를 대거 거리로 내몰아선 해고 과정에서 진통이 커 구조조정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근로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부실기업 오너와 경영주의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아울러 실직자의 생계 유지와 교육재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더욱 면밀하게 구축해야 한다.

관건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사회적 합의를 기초로 기업과 정부가 비용을 분담하는 체계적인 전직구직창업 지원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전직구직 서비스를 통해 실업률을 높이지 않으면서 산업구조 재편에 성공한 독일과 스웨덴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고용전환회사(ETC)는 해고자들이 곧바로 실직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직 근로자를 수용하는 임시 회사다. 이곳에 들어온 근로자는 직업교육과 재정 지원, 직업소개 등을 받는다. 필요한 재원의 50%는 지방노동기관이, 나머지는 다니던 기업의 고용주가 부담한다. 이를 통해 2007년 9.5%로 높았던 독일의 실업률은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속에서도 지난해 4.7%로 낮아졌다.

1980년대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조선 등 전통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어려워진 스웨덴의 경제회생 사례는 더 극적이다. 2003년 대표적 조선도시 말뫼에 있던 대형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매각되던 날 수많은 시민이 몰려와 눈물로 지켜봤다. 이 아픔을 딛고 스타트업(신기술 창업)의 메카로 거듭난 배경에는 실직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1974년 설립된 비영리기관 직업안정보장위원회(JSC)는 해고 근로자에게 재정 지원, 상담 및 직업훈련, 전직 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고용주로부터 임금의 0.3%를 매년 기부 받아 조달한다.

핀란드의 국민기업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 변화에 둔감해 쓰러지자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노키아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겨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우리도 기존의 낡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함께 새 살이 돋도록 좀비기업 연명에 투입되던 각종 지원을 창업에 집중해야 한다. 될 만한 미래형 신산업에 집중하는 ‘산업개혁’을 이뤄내야 코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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