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35) 임건순 작가 편

임건순(35) 작가는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이다. 동양철학 책을 여러 권 쓴 그는 또래들이 동양철학을 싫어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어 이 분야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논어와 손자병법은 앞으로도 계속 읽힐 고전입니다. 대학의 위기로 동서양의 고전을 공부하는 대안대학도 생길 겁니다. 장차 여기서 쓸 교재를 만들고 학생들과 교학상장하는 게 꿈이죠.”

▲ 임건순 작가는 “무덤으로 판명 나더라도 내가 판 무덤이라야지 남이 판 무덤에 끌려들어가면 비참하지 않겠는가”라고 조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중학교 땐 이과를 가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를 선택했죠. 지금은 인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흥미를 느낍니다. 장차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 뛰어들고 싶은 직업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미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고등학교 때 문과ㆍ이과를 가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적성을 잘 몰라도 대학 가서 여러 전공을 탐색해 본 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습니다. 서른 전까지는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이른바 ‘인생의 도박’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대학은 어쩌면 허구성이 강한 상징 자본인지도 모릅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잘 안 되니 사학재단 좋은 일만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단적으로 과거 상고 나온 사람이 하던 일을 요즘엔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이 합니다. 남자의 경우 군복무 기간을 더하면 6년간 사회 진출을 지체시키고 만혼의 원인이기도 하죠.

저는 제도와 인식을 바꿔 대학과 대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대학을 안 나와도 대접 받는 사회로 나아가야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성세대 가운데 펄쩍 뛸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대학 나와 직장 잡고, 결혼해 집 사고 중산층으로 사는 길은 이제 차단됐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이에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로서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이 셋이 일치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이들이 서로 어긋나면 하고 싶은 일에 방점을 찍으세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남들도 좋아할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좋아하고 남들은 싫어하는 것을 찾아내면 블루오션에 무혈입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가족 부양 등을 이유로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합니다. 결국 안정적 직장과 높은 급여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죠. 부모 세대 특히 시골 출신에 어렵게 자란 부모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았고 그렇다 보니 자식에게도 팀 배팅, 희생 번트를 강요하고는 합니다. 그 결과 상당수가 부모 인생의 서사구조에 맞추게 돼요. 그런데 그러다 언제 장타 칠 거예요? 언제 홈런을 날리죠?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선택한 일에 죽기 살기로 매진해야죠. 그러다 보면 홈런을 날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실패해도 해야 하는 일을 하다 실패했을 때보다 덜 억울할 거 같지 않아요? 비록 삼진아웃을 당하더라도.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무덤으로 판명 나더라도 내가 판 무덤이라야지 남이 판 무덤에 끌려들어가면 비참하지 않을까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입해야 합니다.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재미가 없으면 사는 게 너무 괴롭지 않겠어요? 무엇보다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취업 문제에 관한 한 부모 이기는 자식이 많지 않습니다. 부모와 맞서야 한다면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을 벌이세요. 국지전으로는 자식이 못 이깁니다. 전면전이라야 승산이 있습니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죠. 행복의 기준이 내 안에 있는 진정한 개인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행복의 기준을 내 안에 세우라

그러려면 남다른 준비를 해야 합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죠.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게 아닙니다. 우선 고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스토리를 쓰고 플롯을 만들어 가야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요? 대부분 사교육이 주범입니다. 자기 생각,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시간을 쏟지 않았고, 짧은 시간에 빨리 찍는 문제 풀이에 익숙해진 탓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내 삶의 맥락을 파악하고 생각의 줄기를 잡아가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의 지식과 경험을 나름대로 질서 있게 조합할 수 있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공부로는 인문학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선택에 필요한 안목을 기르고 시야를 넓힐 수 있죠. 타인에 대한 존중심, 선택에 필요한 용기도 생깁니다. 인문학의 핵심은 고전 공부입니다. 초보자라면 고전 자체보다 고전으로 인도하는 입문서, 해설서 등 교양서를 보세요. 단 무늬만 인문학, 도구적 이성만 주입하려는 자기계발서는 배제하세요.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성공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성공 자체에 딴지를 거는 게 인문학이에요. 왜 성공해야 하나? 무엇이 성공인가? 성공하면 행복해질까? 성공 후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또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야 하는데 그동안 많이 읽지 않았다면 서유기를 추천합니다. 삼국지보다 낫습니다.

독서는 통찰력을 길러 줍니다. 책 아닌 매체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죠. 책을 읽을 때 내 것으로 만들려면 ‘느리게’ 반복해서 읽고, 메모하고, 주요 내용은 외워야 합니다. 저는 암기가 우리 교육을 망쳤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속성으로 하는 문제 풀이예요. 암기를 통해 남의 지식이 내 것이 될 때 비로소 새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생깁니다. 남과 구별되는 독특함이죠.

스펙 쌓기로는 이런 차별화를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스펙도 언제나 상대적 고스펙으로 대체될 수 있어요. 나만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시장에서 대체되지 않는 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엔 “공부해서 남 주나?”라고 했지만 공부해서 남 줘야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죠.

저도 다른 젊은이들처럼 집 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헬조선’이란 시각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애써 성취한 것을 부정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로 거듭나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을 긍정하듯이 내 나라의 성취도 긍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순정과 낭만, 기백이란 말이 사라지고 노력과 열정이 비웃음의 대상이 된 이 사회를 용인하지 마십시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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