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뼈아픈 기원을 아는가
암살의 뼈아픈 기원을 아는가
  •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 호수 188
  • 승인 2016.04.2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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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암살 ❷

▲ 염석진(이정재)이 1949년 서울 어느 뒷골목에서 안옥윤의 손에 죽는 게 영화 ‘암살’의 유일한 암살 장면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1200만 관객을 동원, 역대 흥행순위 7위에 이름을 올렸다. 흥행성공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교과서 문제, 독도, 위안부 문제 등으로 켜켜이 쌓인 ‘반일감정’의 정서적 호소도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하다.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우리의 항일투사들은 친일파의 거두 강인국(이경영)을 죽인다. 아울러 간도사변에서 무고한 조선 민간인 300여명을 학살한 책임자로 설정된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도 사살한다. 보너스로 쌍권총과 따발총으로 정확한 수를 헤아리기 힘든 일본군과 헌병들을 닥치는 대로 사살한다.

김좌진, 홍범도 장군의 전설적인 청산리 전투급의 ‘대첩’이 경성 한복판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현재 신세계 백화점 명동 본관)’을 중심으로 재연된다. 7일간에 걸쳐 벌어진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사망자 수가 약 500명으로 추산된다는데, 1933년 경성 한복판에서 두어 시간에 걸쳐 안옥윤(전지현), 속사포(조진웅),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영감(오달수) 4명의 신들린 총잡이들이 사살한 일본군과 헌병들만 100명은 넘을 듯하다. 가히 경성대첩이다.

영화 제목은 ‘암살’이지만, 강인국과 마모루 사령관 제거 방식은 대규모 테러나 전투에 가깝다.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킨다. 홍콩의 람보 주윤발은 상대를 제거할 때 치사하게 숨어서 저격하지 않는다. 불문곡직하고 성냥개비 한 개를 문 채 혈혈단신 쌍권총으로 현장을 초토화한다. 굳이 ‘암살’ 장면을 꼽으라면 영화 마지막에 일제의 밀정으로 맹활약하다 해방 후에는 경찰간부로 승승장구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까지 빠져나간 염석진(이정재)이 1949년 서울 어느 뒷골목에서 안윤옥에게 처단되는 장면이 유일하다.

그러나 암살이든 테러든 결코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 명분과 이유는 차치하고 인명을 살상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암살자(assassin)’라는 말은 12세기 유럽의 대규모 십자군 침략에 맞선 이슬람의 전설적인 저항군 지도자 하산(Hassan Sibai) 장군이 십자군에게 부모를 잃은 이슬람 고아들을 모아 ‘하시시(hashish)’라는 강력한 마약을 먹여 적군을 암살한 데서 비롯됐다.

1990년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각국이 내전에 휘말렸을 때에도 반군세력들이 고아들에게 마약을 투여하고 살육을 저지르게 해 국제문제가 되기도 했다. 내전이 종결된 후 가족의 처참한 살해 장면을 목격했던 아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보다 사람을 죽였던 아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고, 이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과 사회복귀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김재규 정보부장은 ‘야수의 마음으로 쐈다’는 법정진술을 남겼다. 이 역시 ‘야수野獸의 마음’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일인 듯하다.

▲ 영화 ‘암살’에서 대부분의 장면은 테러나 전투에 가깝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200만명의 관객들이 경성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홍콩 누아르를 뒤섞은 듯한 ‘암살작전’ 영상에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인간의 살상에 관한 건 어떤 경우든 머리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논쟁도 뜨겁다.

데이비드 로딘(David Rodin) 같은 공리주의자는 “테러나 암살과 같은 ‘덜 도덕적인 행위’에 의해서 달성되는 결과가 ‘도덕적인 행위’의 결과보다 공익이 더 크다면 테러나 암살이 용인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같은 현실주의자는 “한 국가나 공동체가 궤멸의 위협 아래에 놓여 있을 때 테러는 용인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모두 애매하고 요령부득의 규정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을 통해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는 암살과 테러에 희열을 느끼고 그것을 상찬해야 하는 모순 속에 산다. 이는 어쩌면 ‘정신분열증’을 유발하는 환경이다. 모두가 하나의 보편타당한 기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쉽지 않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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