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베이징 모터쇼를 가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마켓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대륙 점령’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혁혁한 성과도 올렸다. 현대차가 중국 베이징北京에 택시를 공급한 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런 기세가 예년만 못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아서 되겠는가. 우리나라 자동차, 다시 질주할 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2016 베이징 모터쇼’를 찾아 한국 기업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 중국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열린 2016 베이징 모터쇼에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들이 대거 참석했다.[사진=뉴시스]

‘2015년 26.0%.’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다. 우리나라가 ‘차이나 호재’ ‘차이나 리스크’에 쉽게 휘말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국내 주력산업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사례를 보자.

2011년 이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지키던 삼성전자는 2014년 3분기 샤오미에 밀린데 이어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상위 5개사 중 애플을 제외한 4개사가 화웨이 등 중국기업이다. 2010년까지만 중국 굴삭기 시장점유율 1위(15%)를 질주하던 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은 현재 매물로 나와 있다.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1월 7위까지 곤두박질쳤다. 1위 자리는 중국 민영기업인 싼이중공업이 차지했다.

포스코ㆍ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산업도 중국업체의 물량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철강업체들은 경기침체에 따른 철강수요의 부진에도 생산량을 지속 늘려왔다. 이 때문에 공급과잉 압력이 강해졌고, 철강제품 가격이 떨어졌다. 그 결과, 국내 철강업체의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난 10년간 중국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온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업계의 맏형격인 현대차그룹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조원대가 무너졌다. 2010년 4분기 이후 21분기 만이다. 부진의 원인은 중국시장이었다. 중국시장에서 현대차ㆍ기아차의 1분기 판매량은 36만대로 전년 대비 16%나 감소했다.

현대차는 중국 베이징자동차와 합작공장을 설립, 2000년 중국시장에 진출했다. 2008년 중국 올림픽 개최 당시 현대차의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가 베이징北京의 표준택시로 선정되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올해 1월 중국의 승용차 판매량 순위에서 전년 동월 대비 27.2% 감소한 7만5200대 판매에 그쳐 9위로 떨어졌다. 중국의 로컬 기업인 창안(13만3700대)과 창청(8만200대)은 물론 일본계 합작사인 둥펑닛산(8만1500대)에도 역전 당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하거나 기술을 빌려 합작생산하는 데 머물던 중국 기업의 약진에 부메랑을 맞은 것이다.

특히 창안은 중국 로컬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00만대 승용차 판매를 돌파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중국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고 중국은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한 큰 시장이기 때문에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과는 다른 현실에 직면한 셈이다.

위태로운 차이나 리스크

그렇다고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이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중국은 판매량 기준으로 미국보다 앞서는 세계 최대 자동차 마켓이기 때문이다. 중국시장에서의 선전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카드다.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목도할 수 있는 자리가 최근 마련됐다. 4월 25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열린 2016 베이징 모터쇼다.

총 면적 2만6000㎡(약 7800평), 8개의 전시장에는 2500여개의 완성차와 부품업체가 참가했다. 총 1179대 차량이 전시됐고, 신차 33대가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 역시 글로벌 기업들과 자웅을 겨뤘다.

첫 포문은 기아차가 열었다. 기아차의 프레스 콘퍼런스는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됐다. 1232㎡(약 374평) 면적의 기아차 부스에는 이른 아침부터 글로벌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다. 기아차는 이 자리에서 소형 하이브리드 SUV인 ‘니로’를 처음 공개했다. 니로는 올해 하반기 현지에 출시된다. 2012년 이후 연평균 46%씩 증가하고 있는 중국 SUV 시장이 타깃이다. 도로 사정이 나쁜 중국 소비자는 세단보다 차체가 높은 SUV를 선호한다. 니로의 무기는 높은 연비다. 19.5㎞/L로 다른 동급 디젤 소형 SUV와 비교해 뛰어나다.

▲ 현대차는 친환경차인 '아이오닉'을 올해 하반기 중국에서 판매한다.[사진=뉴시스]

K3 터보의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모델인 ‘뉴 K3 터보’도 최초로 공개했다. 특히 K3는 마술 마케팅으로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중국의 유명 마술사인 ‘YIF’가 K3의 다양한 기능을 마술로 풀어냈다. 기아차의 중국 합작 법인인 둥펑위에다기아 김견 총경리(부사장)는 “이번에 선보이는 K3 터보 모델은 젊고 세련되면서도 대범한 이미지를 구현한 외관 디자인이 특징”이라며 “또한 고객 편의를 위한 최첨단 신사양을 대폭 적용하여 고객들의 기대를 만족 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11시에는 쌍용차의 프레스 콘퍼런스가 열렸다. 면적 605㎡(약 183평)의 쌍용차 부스에는 최종식 쌍용차 사장이 직접 참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주력 카드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티볼리 에어’다. 중국에서는 ‘XLV’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기존 모델인 티볼리보다 트렁크 용량을 두배가량 늘린 게 특징이다. 티볼리 에어의 트렁크 용량은 720L다. 2열 시트를 접으면 1440L까지 늘어난다. 지난 3월 한국에 출시된 이후 한 달 만에 계약 대수 5000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최종식 쌍용차 대표는 “중국 전역의 네트워크를 통해 6월부터 티볼리 에어를 본격적으로 판매한다”며 “높은 성장세가 지속되는 중국 SUV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판매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UV 앞세운 기아차의 반격

뒤이어 현대차 프레스 콘퍼런스가 열렸다. 현대차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큰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1566㎡(약 475평)에 4개의 특별존을 만들어 총 17대의 차량을 전시했다. 특히 중국시장에 특화된 전용 모델을 선보인 점이 눈에 띄었다. 바로 중국형 ‘베르나(현지명 위에나)’ 콘셉트 모델이다. 베르나는 중국의 20~30대를 타깃으로 하는 도심형 세단으로 실내 공간을 넓히고 안전ㆍ편의 사양을 대폭 강화했다.

2010년 8월 출시된 중국형 베르나는 현재까지 총 107만대가 팔려 해당 차급 시장 판매량 1위를 지키고 있는 베스트 셀링카다. 이번에 선보인 모델은 중국 도로 특성에 맞춰 승차감을 개선하고 전장과 휠베이스를 각각 5㎜, 30㎜ 늘려 실내 공간을 넓힌 게 특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시장은 현대차를 ‘가격 대비 안전하고 튼튼한 차량’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신형 베르나는 이런 현대차의 긍정적인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도시에서 포화 상태가 된 자동차 시장이 중소 도시로 확산되면서 중저가 차량 수요가 늘고 있는 점에서 업계는 베르나의 성공을 점치고 있다. 중국에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민감한 소비자 층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중국 판매를 앞둔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아이오닉 EV’도 데뷔했다. 중국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친환경차 시장을 놓칠 수 없어서다. 특히 아이오닉 EV는 28㎾h 용량의 배터리로 한 번 충전해 180㎞를 달릴 수 있다.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 G90(EQ 900)과 G80, 콘셉트카인 ‘뉴욕콘셉트’ 등도 별도 전시 공간으로 마련한 제네시스 존에서 공개됐다. 이밖에도 중국형 아반떼와 쏘나타, ix25 등이 모습을 보였다.

▲ ①현대차 전시관에 몰려든 관람객들 ②기아차의 친환경 SUV '니로' ③쌍용차 전시관에 모인 취재진들 ④삼성SDI 전시관 전경.[사진=김다린 기자]

더욱 흥미로운 건 이날 현대차 부스에는 모든 전시관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람객의 눈이 쏠렸다는 점이다. 베르나의 홍보대사를 맡은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 베르나 콘셉트카를 타고 깜짝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드래곤 마케팅 효과는 엄청났다. 현대차의 미디어 발표회 시간이 다가오자 현대차 발표회장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 통제됐고 현대차 전시장은 공안에 둘러싸였다. 이들의 통제에도 지드래곤을 보려는 관람객들은 계속 밀려들었다. 막아서는 공안과 밀고 들어가려는 관람객 사이에서 고성과 실랑이가 오갈 정도였다. 한 외국인 기자는 “오늘 행사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파가 몰린 곳은 현대차뿐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베이징 모터쇼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기업도 참여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를 선보였다. 지난해 기준 6조4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20년이면 18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시장을 선점한다면 우리나라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삼성SDI가 선보인 급속충전 배터리 셀은 30분 이내에 80% 이상 급속충전을 반복해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전기차에 탑재할 경우 운전자는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속충전하고 오후에 운행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해당 제품이 업계 최고 수준의 고출력 장수명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현대다이모스, LG화학 등이 전시관을 차리고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자사 기술력을 뽐냈다.

가성비에서 앞서는 현대차

우리나라 기업은 이번 행사에서 가능성을 내비친 동시에 한계도 남겼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빈약한 친환경차ㆍ스마트카 등 미래차 라인업이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뿐만 아니라 로컬 기업에도 뒤져있다는 평가다. 특히 중국의 지리자동차는 한번 충전에 235㎞를 달리는 전기차를 공개했다. 주행거리는 긴 데 판매가격은 저렴하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 역시 수십 종의 차량을 전시장에 선보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기술을 뽐냈다. 중국 IT 기업 러스왕의 자회사 러에코도 자율주행 전기차 ‘러시’를 전시했다. 창안자동차는 자체 개발한 무인자동차 ‘루이청’ 두 대로 2000㎞를 달려 모터쇼 일정에 맞춰 베이징에 도착했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중국의 자동차 기술혁신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중국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것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지상과제”라며 “여전히 낮은 수준의 자동차 보유율을 감안하면 아직 차이나 리스크에 낙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으로 헤매고 있는 지금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얘기다.
중국 베이징=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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