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채널 출혈경쟁의 ‘비극’

▲ SSM이 규제와 유통채널 내 경쟁 심화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규모는 동네슈퍼만도 못한데 규제는 대형마트급이다. 그렇다고 규제를 풀어주자니 대기업 유통채널인 게 걸린다. 그야말로 이러기도 애매하고 저러기도 애매한 존재다. 그러는 사이 실적은 곤두박질해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 보인다. 간판에 대기업 이름이 쓰여 있으면 뭐하나. 속 빈 강정인 것을.

서울 도봉구에 사는 박민석(가명ㆍ남32)씨는 싱글남이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저녁은 퇴근길 슈퍼마켓에 들러 간단히 장을 봐 해먹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편의점 도시락이긴 하지만 반찬도 여러 가지라 집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슈퍼마켓은 이른 아침이나 주말에 가려고 하면 문이 닫혀 있기 일쑤였다.

박씨처럼 혼자 사는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편의점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가정간편식과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점포 수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달라진 소비문화에 따른 유통환경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모바일 채널로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소셜커머스와의 최저가 전쟁까지 더해져 유통업계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두말할 것도 없고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 market)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SSM의 성장정체가 눈에 띤다.

지난해 주요 SSM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대기업 유통채널이 받아든 성적표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SSM 매출은 전년 대비 매출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줄었다. 롯데쇼핑의 슈퍼마켓 사업부인 롯데슈퍼는 2014년과 2015년 매출이 2조3320억원으로 동일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이 140억원에서 110억원으로 17.4% 감소했다. 롯데의 편의점 사업부문(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에서 올린 23.4%, 21.7%의 신장율과 비교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롯데슈퍼는 그나마 양반이다. GS리테일의 GS슈퍼마켓과 에브리데이리테일(이마트) 에브리데이 실적은 더 부진하다.
 
지난해 편의점 매출이 30% 이상 성장한 GS리테일은 슈퍼마켓 사업부(GS슈퍼마켓)에서 1조389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약 4.3% 올랐다. 반면 2014년 16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약 8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도 심각하다. 1조3314억원의 매출을 올린 2014년 GS슈퍼마켓의 영업이익률은 0.1%다. 2015년(1조3893억원)에는 그 비율이 더 낮아져 0.1%에도 채 못 미쳤다. 편의점 채널인 GS25가 ‘혜자 도시락’을 선보이며 편의점 열풍을 이끄는 사이 한쪽에선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GS리테일이 별로 남는 게 없는 영업을 했다면 에브리데이리테일은 아예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2013년 27억원의 영업이익을 챙긴 이후 계속 적자운영이다. 2014년과 2015년에 매출이 각각 7743억원, 8594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7억원, 2015년에는 -10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이 11% 증가하는 동안 110억원 이상을 손해 본 셈이다.

신통치 않은 SSM 성적

에브리데이리테일 측은 인건비, 지급수수료 등 판관비(2347억원)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 늘어난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인건비(28.5%), 지급수수료(23.6%), 임차료(17.2%) 등의 비용이 상승하다 보니 전년대비 15%나 증가했다는 거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실적 저하의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는 정부의 SSM 규제, 둘째는 가격경쟁으로 인한 유통채널 내 경쟁심화다. 정부는 2010년 11월부터 전통산업보존구역을 지정해 반경 500m 이내 대규모점포(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SSM) 등록을 제한했다. 이것이 이듬해 6월 1㎢ 반경으로 개정됐고, 2012년 1월부터는 영업시간 제한이 포함되며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됐다. 1년 후 다시 유통법이 강화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금지됐고, 월 2회 의무휴업까지 도입됐다. 주 대상은 대형마트와 SSM였다. 신규출점 등록이 쉽지 않아진 것은 물론 영업에도 규제가 강화된 거다.

▲ 전문가들은 SSM이 가격 경쟁을 하기보다 슈퍼마켓만의 경쟁력을 강화해 신선식품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대형마트가 규모(매장면적 합계가 3000㎡ 이상)의 규제를 받는 반면 SSM은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 직영하는 점포’라는 이유로 동일한 대형마트와 동일한 규제를 받는다는 거다. 업체 관계자는 “전통시장과 중소슈퍼마켓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SSM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는 볼멘소리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방계 유통채널인 SSM은 ‘골목상권 침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규제는 그래서 SSM이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한 유통전문가는 “SSM이 규제를 받아들이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스스로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SSM 규제 과한가 괜찮나

이다. 고상범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기획팀 과장은 “대형마트와 SSM의 실적이 점점 악화되는 것은 유통채널 내 경쟁이 가장 클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히 SSM은 최저가 경쟁에 휩쓸려 함께 가격 경쟁을 하기보다 슈퍼마켓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으로도 쇼핑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선식품을 확대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다. 최근 최춘석 롯데슈퍼 대표가 “슈퍼마켓의 경쟁력은 신선식품”이라고 강조하며 ‘신선식품 신경영’을 선포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고 과장은 “SSM업체들에는 지금이 과도기”라며 “식문화의 변화로 외식과 가정간편식 수요가 많아져 SSM이 안정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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