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희망 있다면 분투하라
[Economovie] 희망 있다면 분투하라
  •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 호수 189
  • 승인 2016.05.10 0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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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암살 ❸

▲ 영화 ‘암살’에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암살’에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다. 그래서 간혹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극강’의 친일파 이강국(이경영)은 ‘극강’의 독립투사인 마누라와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 사이였다. 이강국은 20년 만에 찾은 쌍둥이 친딸 안옥윤(전지현)을 독립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말의 고뇌도 없이 사살한다.

안옥윤 역시 친일파 아버지를 제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장총을 메고 만주에서 경성으로 잠입한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살부계殺父契’라는 게 존재했다고 하나 친일파 아버지를 제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자식들의 모임이 아니라 사회주의 토지분배를 반대하는 악덕지주 아버지들을 서로 대신 죽이는 ‘사회주의에 물든 지식청년’들의 결사체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차마 동지의 아버지를 대신 죽이지는 못해서 실행률은 제로였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살부계 실패를 뒤로하고 하와이로 떠난 어느 대지주의 자식인 듯하다.

카와구치(박병은) 대위는 경성 한복판에서 행진하던 조선인 여학생이 자신의 어깨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에서 총살해 하와이 피스톨의 의분을 불러일으킨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식민지 통치방식에 대전환이 있었던 1933년 경성에서 있었을 법한 장면인지도 의문스럽다.

오히려 조연인 속사포(조진웅) 캐릭터가 영화의 현실감을 살려준다. 그는 명색이 신흥무관학교 마지막 졸업생이다. 현재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만주에서 개교, 2000여명의 독립투사를 양성한 독립군 요람이다. 그러나 속사포는 독립의 꿈과 희망을 잃고 뺀질거리며 살아간다. 염석진(이정재) 대장과 김원봉의 암살 작전 합류 제안에도 보상과 수고비부터 챙기려들고, 착수금을 떼먹고 튀려는 시도도 한다. 대단히 현실적이다.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300불만 받으면 아무나 확실히 죽여주는 특급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에게 냉소적으로 묻는다.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나 죽인다고 조선이 독립된다고 생각하나?” 안옥윤이 똘망똘망 대답한다. “안 되겠지. 그렇지만 누군가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지.” 하와이 피스톨은 ‘현실’을, 안옥윤은 ‘희망’을 말한다.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나 죽이면 새로운 사령관이 부임해 청산리 전투에 패배한 보복으로 3000명의 간도 조선인을 대학살했듯이 조선인들을 더욱 가혹하게 핍박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암살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안옥윤은 ‘희망’에서 찾는다. ‘희망 전도사’인 셈이다.

▲ 염석진(이정재)은 해방의 희망을 잃고 일제의 밀정이 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의 마지막 1949년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의 밀정에 충실했던 염석진은 ‘반민특위 재판’을 유유히 빠져나가 어느 시장통 ‘양키물건’ 가게에서 여유로운 쇼핑을 하던 중 안윤옥에게 걸려든다. 안윤옥이 총구를 겨눈 채 재판장처럼 묻는다. “왜 동지들을 팔아 넘겼나?” 염석진의 명대사가 나온다. “몰랐으니까. 조선이 독립될 줄 몰랐으니까.”

염석진의 표정이나 어투에 참회는 없고 억울함과 분노만 이글거린다. 한때 최고의 독립투사였던 염석진은 조선독립의 ‘희망’을 잃는 순간 일제의 밀정이 됐다. 사회개혁의 희망을 잃은 열혈청년은 하와이로 건너가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되고, 조국해방의 희망을 잃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속사포는 뺀질이가 됐다. 이들은 자신의 변신을 탓하지 않는다. 희망이 사라진 세상을 탓한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한다. 형편만 허락한다면 어디 조용한 나라에 이민 가서 살고 싶어 한다. 결혼이나 자식은 포기하고, 그저 내 한 몸 편안하게 즐기며 살겠다는 거다. ‘희망’을 간직하면 독립투사들처럼 고통스럽게 분투해야 한다. ‘희망’을 놔버리면 염석진이나 하와이 피스톨처럼 일신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을 놔버리는 순간 모든 동력은 사라진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가 그래서 불안하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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