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줄이기, 그 위험한 전략

빚을 줄여 나라곳간을 튼실하게 만들겠다는 방침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무작정 지출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불요불급不要不急 예산을 줄이고, 꼭 필요한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확보해야 한다. 나라곳간을 정비하는 작업에 ‘정치’와 ‘권력’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 정부는 지출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나랏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중앙ㆍ지방 정부부채와 공공기관ㆍ공기업 부채까지 모두 합한 전체 나랏빚은 약 1284조원. 국민 1인당 2527만원(국민 5080만명 기준)의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중앙ㆍ지방 정부부채만 약 611조원(5월 3일 기준)이고, 여기에 1364억원의 빚이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OECD 국가의 평균 부채비율은 115.2%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은 41.6%(정부부채만으로는 37.9%)로 OECD 평균의 절반도 채 안 된다.

하지만 총 국가부채 중 정부부채 611조원은 만기가 정해져 있어 기간 내에 현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상황도 아니다. 게다가 나랏빚이 느는 속도가 무척 가파르다. 2014년 1월 기준으로 국가부채는 1초당 109만원 증가했지만, 5월 현재 기준으로는 1초당 158만원씩 증가하고 있다. 2년여만에 1초당 국가부채 증가액이 50만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재정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 22일 ‘2016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중장기적 재정 위험에 대비해 국가재정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재정준칙을 정하는 등 선제대응 하겠다”면서 재정건전성 강화 방안들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현재의 지출구조가 지속되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60%대로 늘어난다”면서 “인구구조 변화, 잠재성장률 하락, 복지수요 증가 등으로 인해 국가재정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보험은 현 제도 유지 시 지속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사회보험과 지방재정까지 포괄하는 ‘재정운용의 새 틀’을 마련하기로 했다”면서 “성장동력 확충, 일하는 복지 실천, 페이고(pay-go) 실시, 연금개혁 등으로 재정건전화와 고성장을 함께 이룬 스웨덴 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정운용의 새 틀’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추진전략으로는 재정준칙과 페이고, 집행현장조사제 등을 포함하는 재정건전화 특별법 제정을 가장 맨 위에 내걸었다. 더불어 사회보험의 건전한 운영을 위한 관리 강화,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의 책임성 강화와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제도 개선 등도 거론했다.

이처럼 정부가 미래에 닥칠 재정을 걱정해 이를 공론화하고, 각종 대책들을 내놨다는 점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을 두고 갑론을박이 만만치 않다. 재정건전화는 전 국민이 공감하는 사안임에 틀림없지만, 정부의 재정건전성 강화 주장은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어서다.

지출만 잡으면 끝나나

정부가 재정준칙을 세우겠다는 선언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 정부의 집권 초기인 2013년에도 ‘재정준칙’을 세워 불요불급 예산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준칙 수립 논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사이 정부 예산은 갈수록 늘어났다. 2016년 예산도 전년 본예산 대비 3% 늘어난 386조7000억원이다.

산업분야 예산과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이 조금씩 내려간 걸 제외하면 모든 분야의 예산이 늘었다. [※참고 : 2007년 18조원이던 SCO 예산은 이명박 정부에서 꾸준히 증가하다가 지난해 26조원을 넘겼고, 올해 겨우 22조원대로 낮아졌다. SOC 예산이 줄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술 더 떠 지난 4월 대부분의 주요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 “내년(2017년) 예산은 신산업 지원과 일자리 창출 등에 중점을 둘 것이다. 예산 증가 규모는 내년도 경제전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장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재정건전성은커녕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줄곧 총지출 증가율은 총수입 증가율을 웃돌았다. 증가율 격차도 2013년엔 1.4%, 2014년엔 1.7%, 지난해엔 2.6%로 꾸준히 커졌다. 불요불급 예산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수년째 ‘재정준칙’의 수립만 운운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상한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내건 공약의 전반적인 기조는 ‘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들겠다’로 요약된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선 당시 일부 새누리당 후보들은 아예 ‘예산폭탄’을 전면에 내걸고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정부의 의도를 의심할 만한 이유는 또 있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면서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 줄이기는 논의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물론 정부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개혁을 통해 비용을 많이 줄였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체 국가부채의 절반가량이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라는 걸 감안하면 논의 대상에선 제외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이런 정부가 유독 복지재정 줄이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우리나라 재정은 건전한 편으로 평가받지만, 재정 책임성이 무너지고 복지 포퓰리즘이 확산되면 순식간에 악화될 수 있다”면서 재정건전화 특별법 처리를 주문했다. 재정 책임성을 확보함과 복지재정을 줄이거나 늘리지 않겠다는 거다.

하지만 복지재정엔 쉽게 줄일 수 없는 경직성 예산이 많다.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볼 때 보건복지 분야에 편성된 예산은 약 123조원.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지출은 공무원연금 등에 지원하는 공적연금 지출(약 32조원)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기금에 들어가는 돈이 약 14조원이다. 주택구입자금 대출과 임대주택 건설에 들어가는 돈이 12조원, 노인연금과 노인일자리 창출에 약 9조원의 돈이 들어간다. 건강보험에 들어가는 돈도 8조원에 달한다. 123조원 중 약 75조원이 줄일 수 없는 예산인 셈이다. 또한 노인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은 인구 노령화로 인해 향후 지출 증가가 불가피하다.

▲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보육료에 포함하려 하자 지방교육청들이 반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세입 전략 없이 재정건전화 없다

결국 정부가 복지재정을 줄이려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정부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보육료에 포함하지 않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정부가 지방교육청에 내려주는 예산)에 편성하도록 강제하려 해 물의를 빚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얘기하면서 세입에 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점도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전문가들은 “수많은 복지정책들을 추진하겠다면서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복지 때문에’ 재정지출을 줄여야겠다고 말한다.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재정건전성을 운운하면서 여전히 세입을 늘리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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