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혈압계는 혈압을 재는 기계에 불과하다.[사진=아이클릭아트]
우리 몸은 혈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과 싸운다. 약으로 혈압을 낮추면 어떤 형태든 혈액 순환은 방해를 받는다. 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을 수축시키거나 심장의 박출량을 늘려 혈압을 올리는 조치를 한다. 약발이 다하면 혈압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상승하게 된다. 상승하면 또 먹게 되니 우리 몸은 호시탐탐 떨어진 혈압을 올리기 위한 기회만 엿보게 된다. 혈압약을 먹는 한 이 악순환을 끊을 길이 없다. 그래서 혈압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낫지도 않고 평생 먹어야 한다면 그게 어디 약인가. 설령 약으로 혈압 수치를 낮춰 수치가 정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혈액 순환은 명백히 방해받고 있는 셈이다.

약을 매일 챙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길을 떠난 후 약 때문에 돌아가는 일도 생긴다. 약만 챙기는 게 아니라 수시로 혈압을 재기도 하는데 아예 기계를 들여놓고 혈압을 측정하는 이들도 있다. 잠 깨서 재고, 밥 먹고 재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또 잰다. 변화무쌍한 수치를 수첩에 꼬박꼬박 기록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혈압의 노예다. 혈압에 의한, 혈압을 위한, 혈압의 인생으로 전락해 사는 것이다. 남녀가 뜨거운 사랑을 나눠도 혈압은 올라간다.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 두려워 도중에 사랑을 멈추고 항고혈압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그렇다면 피의 압력을 재는 기계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것일까. 지난호에 언급한 혈압의 단위인 ㎜Hg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Hg는 Hydragyrum, 수은水銀의 약칭이다. 수축기 혈압이 160㎜, 이완기 혈압이 120㎜라면 그것은 말 그대로 각각 16㎝, 12㎝를 의미한다. 심장이 뿜어 올리는 피의 세기가 수은주(수은 기둥)를 16㎝ 밀어 올렸단 얘기다.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금속으로, 물의 13배나 되는 비중을 가지고 있다. 생선에 축적된 수은이 인체의 신경계에 치명적 영향이 있다 하여 꺼리기도 하는 데 과거엔 체한 음식을 내려가게 하거나 매독의 치료 목적으로 마시기도 했다. 음식을 내려보낼 정도로 비중이 큰 수은을 혈압계에 적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비중이 물의 13배라 했으니 수은을 16㎝ 올린다면 물은 2m 가까이 뿜어 올릴 힘이란 의미다.

만약 맹물로 혈압계를 만든다면 높이가 2~3m나 되는 거대한 구조물이 될 것이다. 지구를 3바퀴나 돌 수 있는 12만㎞의 혈관을 시속 216㎞의 속도로 총알처럼 내달리는 혈액은 그 기세가 참으로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다. 이처럼 우리 몸은 항상성 유지라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위해 정교한 톱니처럼 정확히 돌아간다. 필요 때문에 때론 천천히, 때론 거칠게 달리는 혈액의 속도를 우리가 약을 쏟아부어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는 과연 최선일까. 고혈압과 혈압계에 대해 다음 호에 좀 더 알아보자. <다음호에 계속>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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