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하는 종」

누구든 학창 시절 조별 과제 하나쯤은 기억할 것이다. 과제를 혼자 했느냐 무임승차했느냐 잘 협력했느냐에 따라 기억의 색이 다를 뿐이다. 특히 무임승차하는 조원에게 느낀 분노, 무임승차한 사람이 눈치를 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세계적 석학 새뮤얼 보울스 교수, 허버트 긴티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무임승차자를 두고 나타나는 이런 감정은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다른 이와 함께 이익을 추구해야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걸 체득해 왔다는 거다. 어떤 사회든 이타적인 협력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건 이타적 협력이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두 교수는 자신들의 저서 「협력하는 종」에서 초기 인류가 각종 환경재앙, 집단 분쟁 속에서 협력했을 때 생존확률이 더 높고 고도의 이익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협력을 통해 더 큰 이익을 얻고 싶었던 인간은 협력에 유리한 사회적 제도를 만들었다. 그 결과, 현존하는 제도는 이타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구성원이 겪을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두 저자는 또 성공한 사람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성공한 이는 누구보다 협력을 잘한다. 협력에 유리하게 구성된 사회제도에 잘 적응하고 제도를 잘 활용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같은 맥락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이 경쟁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실수’라고 지적한다. 기업이나 국가도 구성원이 협력해야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거다. 경쟁과 효용가치를 우선하는 주류 경제학과 다른 입장을 보이는 지점이다.

두 교수는 이타적 협력이라는 키워드가 오늘날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폭력과 넘쳐나는 정보, 바이러스, 환경오염 등 인류를 불행하게 할 요인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서다.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5만년 전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타적 협력이 더 중요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공공과 정의를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는 두 비주류 경제학자의 뛰어난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학·사회학·심리학·생물학 등 여러 분과를 넘나드는 통섭적 시각에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역작이기도 하다. ‘레온티에프 상(미국 터프츠 대학교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바실리 레온티에프를 추모하기 위해 2000년 제정)’의 수상자가 지난 20여년간 진화생물학과 진화게임이론을 연구하면서 얻은 성과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넘겨보자. 내가 얼마나 이타적인 인간인지, 얼마나 진화에 유리한 인간인지 돌아볼 수 있는 건 덤이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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