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기업-금호터미널 합병 논란

아시아나항공이 자회사 금호터미널을 금호기업에 팔았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팔린 지 5일 만에 금호터미널은 금호기업과 합병됐다. 기업 간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언뜻 평범해보이는 이 경영 결정은 ‘배임죄 논란’에 휩싸여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논란에 펜을 집어넣었다.

▲ 아시아나항공이 자회사 금호터미널을 금호기업에 팔았다. 아시아나항공의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은 이 과정이 위법하다고 반발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 4월 29일 금요일. 아시아나항공은 자회사 금호터미널의 지분 100%(100만4771주)를 2700억원에 매각했다. 매각 대상은 금호기업(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만든 SPC). 이 회사는 지분 매각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유동성 확보를 통한 재무건전성 강화.”

# 연휴를 앞둔 4일. 이번에는 금호기업의 자회사가 된 금호터미널이 공시 자료를 냈다. 모회사 금호기업과의 흡수 합병 결정이었다. 이 회사는 합병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합병을 통해 경쟁력 강화 및 효율성을 증대하고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높임으로써 주주가치를 제고.”

# 연휴가 끝난 9일.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1%를 보유한 2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금호아시아나의 지분 매각’과 ‘금호터미널-금호기업의 흡수 합병’ 과정이 위법하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아시아나항공의 2대 주주로서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13일에는 김성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 명의로 금호터미널에 금호기업과의 합병 중단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

금호석유화학이 제기한 ‘합병 중단’ 요구는 타당할까. 겉으로 보면 금호기업-금호터미널의 합병 과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이 보유 자산을 팔았을 뿐이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를 합병하는 일도 이례적이지 않다. ‘지분 매각-합병’만으로는 문제를 삼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매각, 금호 계열사의 합병이 ‘유동성 확보’ ‘사업간 시너지 효과’ ‘주주가치 제고’ 등에 도움을 줬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런 결정으로 웃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단 합병을 결정한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살펴보자. 금호기업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박 회장과 그의 가족들이 6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부가 없다. 자회사인 금호산업은 누적잉여금이 270억원에 불과한 데다 부채비율이 500%에 육박하는 탓에 배당 여력도 없다.

재무상태도 신통치 않다. 금호기업은 금호산업의 인수대금인 7228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NH투자증권에서 3300억원, 자회사ㆍ친인척회사ㆍ거래처 등에서 1700억원가량을 빌렸다. 반면 금호터미널은 금호그룹 계열사 내에서도 알짜기업으로 꼽힌다. 현금성 자산 3000억원가량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매년 100억~15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금호기업에 무슨 일이…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렇게 부채도 많고 이익도 못내는 기업(금호기업)이 알짜 회사(금호터미널) 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여기엔 ‘차입인수(LBO)’라는 기법이 숨어 있다. 이는 남의 돈을 빌려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인수ㆍ합병(M&A)의 한 방법이다. 통상 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린 뒤 기업을 사들인다.

당연히 기업을 인수하는 입장에서는 인수 자금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금호기업은 금호터미널 주식을 담보로 NH투자증권으로부터 2000억원(6개월만기)을, 대신증권에서 금호산업 주식을 담보로 800억원을 빌려 금호터미널 지분인수에 나섰다.

문제는 LBO 거래가 배임 논란을 빚기 쉽다는 점이다. 만일 기업 인수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자산을 담보로 제공한 피인수 기업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당 회사의 채권자와 주주가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자금을 빌리는 쪽인 금호기업은 담보 가치에 상응하는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반면, 담보를 제공하는 금호터미널은 담보 가치만큼 재산상의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법원은 LBO 거래에 제동을 걸었다. 배임죄를 선고한 일부 LBO 거래에 대해 대법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일률적으로 LBO에 의한 기업인수를 주도한 관련자들에게 배임죄가 성립한다거나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배임죄의 성립 여부는 차입매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의 행위가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돼야 한다.” 개별 사건에 따라 배임이 인정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LBO를 활용한 기업 M&A를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임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인수는 어느 쪽일까. 법무법인 제이앤파트너스의 전병우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분명 LBO는 맞다. 하지만 이를 배임죄로 인정할 수 있는지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이 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금호기업의 취약한 재무상태를 비춰보면, 결국 금호기업의 차입금 변제에는 금호터미널의 우량 자산이 동원될 게 불보듯 뻔해서다. 다시 말해 두 기업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합병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저 우량기업의 자산으로 부실기업의 채무를 갚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은 금호터미널에 대한 배임죄를 검토할 수도 있다.”

배임죄는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자신의 임무를 위배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고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 경영과 관련해서는 경영인이 회사법상의 의무를 위배해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사적 이익을 취했을 때 적용된다. 만일 두 기업의 합병이 지분을 인수할 때부터 예정돼 있었고, 그 목적이 오로지 금호터미널이 보유한 자산을 활용해 금호기업의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라면 이는 금호터미널이라는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금호기업은 비단 이번 인수자금뿐만 아니라 금호산업 인수 때 발생한 막대한 차입금을 안고 있다 ”며 “추후에도 금호터미널의 곳간을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은 LBO 거래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아시아나항공을 들여다보자. 아시아나항공의 자금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519억원의 적자를 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991.2%로 전년보다 350% 이상 치솟았다. 경영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2013년 23%에 달했던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1.1%로 곤두박질 쳤다.

이렇게 보면 아시아나항공의 비핵심자산의 매각은 매우 합리적인 경영 결정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선제적 구조조정 차원”이라며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2011년 인수 이후 배당이 없었던 금호터미널을 처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완전 딴판이다. 한 전문가는 “비핵심자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시아나의 목적이었다면 금호기업과 합병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차라리 공개경쟁 입찰방식으로 매각공고를 냈다면 적어도 2700억원보다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무슨 죄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이 아닌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터미널을 합병하는 게 ‘유동성 확보’에 훨씬 유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경우, 금호터미널의 현금성 자산과 영업이익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아시아나항공이 직접 받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전병우 변호사는 “결과적으로는 박삼구 회장이라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에 손해를 끼친 행위”라며 “금융권 채무가 많은 금호기업과의 합병은 금호터미널의 가치마저 떨어뜨린다”고 꼬집었다.

정기두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기업은 경영 결정을 할 때 주주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최대 이익’을 낼 수 있게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번 지분 매각 결정은 회계법인이 산정한 자료를 근거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는데, 그 노력이 수반됐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이런 지분 매각 과정이 발생했다면 소액주주들이 가처분 소송을 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우호적인 미디어의 주장과 달리, 박 회장은 아직 그룹의 재건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금호타이어 인수가 남아 있는데, 자금 마련이 녹록지 않다는 평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박 회장은 이번 LBO 흡수합병을 통해 탄탄한 수익성을 갖춘 금호터미널을 손에 거머쥐었다. 이번 M&A가 박삼구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다린ㆍ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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