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네가지 딜레마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해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주요 대상은 조선ㆍ해운업종 3개 기업(대우조선해양ㆍ현대상선ㆍ한진해운)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기저기 나오는 주장들을 보면 기업에 자금을 어떻게 지원할까 하는 논의만 가득하다. 과연 돈만 넣으면 끝나는 건가. 아니다. 방법론과 순서가 더 중요하다.

▲ 정부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현 상황을 책임지지는 않는다.[사진=뉴시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무 것도 명확한 게 없어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 마련 전략, 재원을 마련했을 때의 쓰임새 등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묻자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 관계자가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당연한 답변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서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도 모두 공감한다. 주요 대상은 조선ㆍ해운업종이다. 수조원의 손실을 내고 있는 기업들을 그대로 뒀다간 국가경제를 좀 먹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빨리 수술대에 올려놓지 않으면 병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걸까. 더구나 툭하면 ‘골든타임’을 들먹이면서 빠른 진행을 강조했던 정부가 아니던가. 이유는 간단하다. 구조조정 해법이 그리 만만치 않아서다.

첫째, 시장논리에 입각해 채권단이 주판알을 튕기고 매각이든 청산이든 하도록 내버려두느냐 아니면 사업을 통폐합해서라도 끝까지 살려서 끌고 가느냐 하는 것부터 의견이 갈린다. 기업이 시장논리에 따라 흥하고 망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시장 경쟁에서 밀린다면 다시 부실해지는 건 시간문제”라면서 “기업이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들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전 교수는 “무턱대고 살리겠다고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자금 회수가 쉽지 않고, 나중에 또 힘들어지면 정부가 도와주겠지 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면서 “법정관리를 통해서 채권단이 스스로 득실을 판단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해운업계의 경우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부채비율 200% 이하 맞추기’ 지시에 따라 배를 판 게 손실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는데, 그 책임을 오로지 기업이 지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거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찾아온 호황기를 예상하지 못해 기회를 놓친 것처럼 시장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기업을 정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시장 상황이 좋아지기라도 하면 또다시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향후에도 기업이 이익을 낼 수 없을 거라는 가정 하에 채권단이 정리하게 된다면 대량 실업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텐가”라면서 “다 같이 살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지 부실하다고 무조건 정리해야 한다는 건 다 같이 죽자는 말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둘째,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살린다고 했을 때 들어갈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기본적인 자금 지원 구조는 정부가 채권단인 금융권에 자금을 밀어주고, 채권단이 그 자금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돈을 마련할 방법은 한정돼 있다. 정부 재정(추가경정예산과 증세)을 투입하는 방법, 채권단인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정부보증채권을 한국은행이 매입하는 방법,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양적완화다.

이 가운데 정부보증채권을 한은이 매입하는게 현실적인 방법으로 거론되지만 그 안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방법은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한은이 매입하자는 거다. 하지만 국가가 채무를 대신 떠안는 방식이기에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산은은 채무자가 되기 때문에 자본확충과도 거리가 멀다. 구조조정의 속도도 떨어질 수 있다. 정부에서는 산은이 발행한 코코본드 등 후순위채권을 한은이 인수하는 방식도 제안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산금채 매입과 마찬가지로 국회 동의가 필수다. 한국은행법 개정도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정책금융공사를 통해 조성된 40조원 한도의 금융안정기금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금융권에 선제적 조치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이 기금은 현재 구조조정 취지와도 맞고, 기금을 얼마나 조성할지만 국회 동의를 받으면 된다”면서 “이 기금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법에 따른 관리체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향후 더 많은 부실기업이 나왔을 때 무슨 돈으로 구조조정을 할 건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은행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많으니 혹시 이후에 등장할 신규 부실기업들을 대비해 구조조정 자금 마련 논의를 한번에 끝내고 가자는 취지다.

다만 정상적인 금융기관에 출자ㆍ대출ㆍ채무보증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된 이 기금은 아직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더구나 2014년 말을 기점으로 신청기한이 종료됐다. 다만 필요하니까 다시 꺼내 쓰자는 거다. 중요한 건 재정투입이건 정부보증채권 매입이건 양적완화건 국민 공감대 없이는 힘들다는 점이다.

셋째,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누가 주체가 될 것인지도 숙제다. 공적자금 투입에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전제돼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지난 2000년 산은이 자회사로 편입했음에도 최근 2년간 6조원의 적자를 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국책은행에 구조조정을 맡긴다는 게 모순이라는 거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는 “공적자금이 기업 살리기에 쓰여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면 채권단이든 해당 기업이든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명확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국책은행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도 필요하다.”

▲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에 공적자금을 넣어야 한다.[사진=뉴시스]
넷째, 구조조정으로 실직하게 될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도 남는다. 노동계는 “금속노조와 조선노연 사업장들은 이미 2012년부터 ‘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 구성을 통해 조선산업의 장기적 발전전략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면서 “하지만 정부와 경영진은 이를 무시하다가 이제 와서 묵묵히 일만 했던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일에만 열을 올린다”고 주장했다. 인력 구조조정을  노동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종합해보면 구조조정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어느 하나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없다. 앞서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금 상황을 ‘위기’로 인식,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실책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더 큰 문제다. 중요한 건 순서다. 시장논리에 맡기든,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리든 과연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를 조달할 수 있으며, 어떻게 쓸 것인지를 명확하게 해야 청사진이 보이는 법이다.

김상조 교수는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국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면 비상계획을 짜고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 살릴 기업을 살리려면 돈도 마련해야 하고, 탄탄한 실업대책도 있어야 한다. 모두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데 이걸 누가 하겠는가. 관료들더러 하라면 꼼수만 낼 게 뻔하다. 정치권이 정보를 가진 관료들에게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선에서 할 것인지, 얼마가 들어갈 것인지 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얼마 못 가서 또 구조조정 논의를 해야 할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