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 구축 자금은 얼마나…

기업 구조조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굴까. 아무래도 느닷없이 직장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확충은 기업 살리기용 자금 확보에만 초점 맞춰져 있다. 늘 그랬듯이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논의는 그리 많지 않다.

▲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않고 인력감축만 단행하면 사회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사진=뉴시스]
기업이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면 비중이 큰 지출부터 줄이는 게 정석이다. 일반 기업의 지출비용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판관비고, 판관비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다.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마다 인원감축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로선 이런 상황이 억울하다. 자신들은 경영에 참여할 수도 없고, 경영정보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때문에 경영진의 판단 착오로 기업이 부실화됐다면 억울함은 더 크다. 최근 구조조정을 두고 노동자들이 “단물만 빼먹고 버리는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면서 반발하는 것도, 구조조정에서 실직하게 될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안전망 확보 논의가 기업 회생을 위한 자금 투입 논의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26일 원활한 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지원책으로 국책은행 자본확충, 회사채 시장 안정화, 고용지원, 채권단과 협의체 구축 등을 내놨다. 하지만 고용지원 내용을 보면 실질적인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선ㆍ해운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재취업을 지원하고, 신속한 재취업을 위해 ‘노동시장 4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게 전부여서다. 그나마도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은 “고용사정의 급격한 악화가 예상되는 분야”에 한정하고, 이것도 개별기업 노사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깔고 있다.

노동시장 4법은 노동계가 ‘악법’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근로시간 단축), 파견법(파견 확대)이 포함돼 있다. 구직급여 인상과 기간연장만이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고용보험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당장 해고된다고 해도 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기업 살리기에 공적자금을 써야 되느냐의 문제와는 별도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에 공감하고 있다는 거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는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절대 공적자금을 넣어서 기업을 살리려 하지 않는다”면서 “시장논리의 기준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독일 조선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과감하게 정리에 나섰다”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도 “우리는 그동안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해놓고 이후 그 기업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면 비난하기 바빴지만,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겨 두면 이런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채권단이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면 살릴 수 있는 기업만 살릴 거다. 그럼 채무를 출자전환하고 기업을 살려 놓은 다음 주식의 가치만큼 되돌려 받으면 그만이다. 경영진이 방만한 운영을 하면 채권단이 경영진을 갈아치우면 된다. 기업은 채무탕감만 제대로 하면 다른 비난을 받을 일도, 돈 들어갈 일도 없다는 얘기다. 다만 부실기업에서는 인력구조조정을 안 하면 방법이 없다. 채권단이 인력구조조정을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잘 구축해주면 그걸로 정부 역할은 끝난다.”

독일 구조조정 성공의 비결

“살릴 수 있는 기업이라면 금융안정기금(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는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기업이나 국책은행에 재무조정을 위한 자금 지원 외에도 실업대책도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수준에서는 5조~10조원 사이의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잠재 부실기업들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돈은 더 필요할지 모른다. 해고 노동자들도 더 많아질 수 있다. 하나의 재원으로 많은 돈을 마련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끌어낼 수 있는 재원은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금융안정기금으로 마련하고,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데는 추경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채무 기업 역시 회생한 후에 주식에다 분담금을 부여해서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고,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복직을 약속하는 사회 환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건 ‘비용’, 기업을 살리는 건 ‘투자’라면서 투입 대비 효과가 훨씬 큰 곳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김익성 교수는 “해고 노동자들이 재취업이나 창업을 안정적으로 준비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면 이 역시 투자 아니겠나”라면서 “사회안전망이 비용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인력감축에 노동자들이 심하게 반발함으로 인해서 들어가게 될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사회안전망은 오히려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실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려서 지속할 수 있는 기업만 살린다’는 가정 하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기업은 투명한 경영으로 실적을 올리고, 이익의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면 기업들도 언제든지 부담 없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어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문제다.

그동안 공적자금을 받았던 기업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도마에 오른 건 한두번이 아니다. 일례로 수협은 IMF 외환위기 당시의 부실로 1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푼도 갚지 못했다. 그럼에도 연봉은 쑥쑥 올렸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연봉이 1억원 이상인 수협중앙회 직원은 139명이다. 전년 대비 54% 늘었다. 임원을 포함하면 148명으로 전체 임직원의 6.3%를 차지한다. 전체 인건비는 1152억원으로 5년 전(2010년 858억원)보다 34%나 늘었다. 특히 수협은 2012년에도 공적자금을 받은 후 억대 연봉자가 두배로 늘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 공적자금을 받은 기업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면 공적자금 지원을 받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사진=뉴시스]
도덕적 해이가 구조조정 막아

현재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부실채권이 많아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이 직원 연봉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산업은행의 직원 평균연봉은 지난 2년간 400만원, 수출입은행은 500만원이 넘게 올랐다. 두 은행의 평균 연봉은 1억원 수준이다.

이런 방만경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역시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받은 기업과 금융권의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는 규제방안(2009년)을 만든 바 있다. 중요한 건 기업들이 바뀌지 않을수록 힘들 때 손을 벌리기는 더 힘들어지고,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을수록 구조조정도 더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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