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난 자리에 가성비 들었네
명품 난 자리에 가성비 들었네
  • 김미란 기자
  • 호수 191
  • 승인 2016.05.19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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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대안 가치소비

▲ '합리적 소비'와 '가치소비'를 내세운 국내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인기다.[사진=뉴시스]
끝을 알 수 없는 경기불황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값비싼 명품으로 과시할 만한 여력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소비를 줄였다. 용돈을 모아 명품을 사는 대신 명품 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매스티지’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갈아탔다.

사회생활 4년차인 김가영(가명·30·여)씨는 지난 연말에 받은 보너스를 저축해뒀다가 최근 그 돈 일부로 핸드백을 구입했다. 첫 월급 기념으로 큰 맘 먹고 산 L사 명품 핸드백을 오래 들고 다녀서인지 손때도 많이 타고 싫증이 난 탓이다. 하지만 솔직한 속내는 최근 또래들 사이에서 예쁘다고 난리인 D브랜드 핸드백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L사 제품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모처럼 장만하는 핸드백이라 김씨의 고민은 길었다.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여러개를 놓고 이것저것 꼼꼼하게 비교도 해봤다. 하지만 한번 빼앗긴 마음을 되돌리긴 어려웠다. 결국 김씨는 가죽이 고급스러운 D브랜드 핸드백을 손에 쥐었다.

김씨처럼 명품 대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가계 지출에서 의류·신발에 대한 지출도 줄었다. 2014년에 월 16만9000원이던 지출은 1년 만에 4.4%가 감소해 16만2000원으로 줄었다. 가계에서 지갑을 닫다보니 당연히 유통업체들도 재미를 못보고 있다. 대형마트는 물론 백화점에서도 실적 부진으로 신음소리가 가득이다. 어디 이뿐이랴. 화려함으로 치장한 명품 브랜드마저 속을 들여다보니 알맹이는 텅 비어 있다.

명품 브랜드이 힘을 못 쓰기 시작한 건 사실 한두 해만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2008년 이후 국내에 유통되는 명품의 기세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이는 실적으로 그대로 나타나 실제 국내에 진출한 명품 브랜드의 영업이익은 하향곡선을 타고 있다. 페라가모가 그렇고, 구찌가 그렇고, 크리스찬 디올 역시 역신장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요 패션잡화 브랜드 중 가죽을 하나하나 엮은 모양이 특징인 보테가베네타 정도만 성장세일 뿐이다. 보테가베네타는 2012년부터 34억원, 45억원, 50억원, 66억원으로 꾸준히 실적이 향상되고 있다.


대신 명품 같지만 명품보다는 저렴한 ‘매스티지(masstige)’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스티지는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의 합성어로, 대중적인 제품과 명품 브랜드의 중간 포지션쯤에 해당되는 제품들이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등장한 해외 매스티지 브랜드가 코치(COACH),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토리버치(Tory Burch) 등이다. 이 브랜드들 모두 한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3초 백’이라는 별칭이 붙은 루이뷔통 못지않게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매스티지 브랜드에 이어 국내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브랜드가 인기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쿠론’이 발판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한섬의 ‘덱케’, SK네트웍스의 ‘루즈앤라운지’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09년 석정혜 디자이너의 개인브랜드로 출발했다가 이듬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품에 안긴 ‘쿠론(COURONNE)’은 최근 그 기세가 살짝 꺾이긴 했지만 수년 동안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지난 2013년에는 영국의 블룸버그 통신이 “쿠론은 올해 38%가량 매출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반해 루이뷔통은 6%대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쿠론은 로고를 내세우며 과시의 수단으로 여겨지던 명품백들과 달리 오히려 로고가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디자인과 품질을 중요시하는 요즘 취향을 반영한 결과다. ‘과시형 소비’에서 ‘가치소비’와 ‘합리적 소비’로의 변화를 제대로 읽은 셈이다.

▲ 한섬의 '덱케'는 지난해 백화점 사업 진출 1년 만에 1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사진=뉴시스]
2013년 출시된 SK네트웍스의 ‘루즈앤라운지’는 30~40대를 주요 고객층으로 하는 패션브랜드다. 가방(60만~70만원대), 신발(30만~40만원대), 주얼리(10만~20만원대)를 주로 취급한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루즈앤라운지는 최고급 소재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을 위한 브랜드”라고 소개하며 “이런 점이 불황기에도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는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재와 디자인의 강점을 내세워 이미 마니아층이 형성됐기 때문에 불황이 끝난다 하더라도 지속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덱케(DECKE)’는 1987년 창립 이후 한섬이 독자적으로 처음 선보인 잡화 브랜드다. 2014년 출시한 덱케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 한섬은 쿠론으로 이미 성공 사례를 만든 코오롱FnC 출신의 윤현주 상무를 영입하는 공을 들이기도 했다. 고급스러운 가죽과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덱케는 매장수도 16개에서 24개로 늘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건 60만~100만원대 제품들이다. 루즈앤라운지와 마찬가지로 주요 타깃층은 30~40대다. “합리적 소비, 가치 소비 확산에 맞춰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할 예정”이라는 출사표대로 합리적인 소비 가치에 맞물려 지난해 백화점 사업에 진출한 지 1년 만에 1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월평균 매출액이 10억원을 웃돌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 대신 매스티지 또는 국내 컨템포러리 브랜드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어려운 상황인데 누가 선뜻 옷과 가방을 사는데 지갑을 열겠는가”라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명품 대신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과시형 소비에서 합리적 소비, 가치소비로 이동을 한 건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살림살이가 예전 같지 않아서라는 거다. 길어지는 경기 불황은 이렇게 소비 트렌드마저 바꿔놓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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