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 (38)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편

이원복(70) 덕성여대 총장은 우리나라 교양 만화의 개척자다. 고1 때 시작한 만화 그리는 알바가 평생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직업 세계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려면 일단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아해야 그 분야 베테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책을 읽으면 차별화된 스펙을 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수능을 앞둔 고3입니다. 전공을 선택할 때 학과와 대학의 서열(네임 밸류)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해야 하나요? 그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가요?

A 멘토가 멘티에게

대학 서열은 근거가 불확실한 선입견이거나 우리 사회의 낡은 통념입니다. 일례로 모 대학평가 결과를 보면 좁은 평가 구간에 다수의 대학이 몰려 있어요. 일류 명문대 빼고는 사실상 대학 수준이 거의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공도 마찬가지예요. 학부 전공을 사회에 나가 살리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요즘은 공대에 가라고 많이 권하지만 언젠가 공대 출신도 공급 과잉으로 잉여인력이 되거나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대 중퇴하고 의대 가는 붐이 일었던 게 불과 5년 전 일이에요. 전망도 믿을 게 못 된다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죠. 자신이 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탁월하게 잘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썩 잘해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추월당할 수 있죠. 반면 좋아하는 일은 추월당해도 상관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좋아하는 일은 오래 하다 보면 베테랑이 되고, 선수가 돼요. 그 분야 톱이 될 수도 있고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 가운데는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결국 그 분야에서 살아남게 됩니다. 이 조언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나는 할 줄 아는 게 만화 그리는 거밖에 없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시작해 55년간 그리다 보니 잘한다 소리도 듣게 됐어요. 시작할 때부터 잘한 건 아니에요. 직업 세계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려면 일단 그 일을 좋아해야 합니다.

대학입시 스트레스가 크겠지만 발상을 바꾸면 대학 가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과거보다 선택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죠. 6번의 수시와 정시 응시 기회가 있습니다. 대학 정원과 고교 졸업생 수가 거의 비슷해져 대학 네임 밸류에 연연하지 않으면 이제 대학은 골라서 갈 수 있습니다. 꼭 어느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스트레스가 심한 거죠. 특정 대학에 얽매이지 않으면 고교 생활도 풍요롭고 여유로워집니다. 나중에 대학생활도 더 보람 있게 할 수 있죠.

나는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보는 것이 곧 남는 것’이란 생각으로 폐차 직전 차를 사 줄기차게 몰고 다녔어요. 찻값이 500~1000달러였는데 6대를 폐차시켰습니다. 그러도록 도서관은 한 번도 안 갔어요. 이 아날로그적 자산이 「먼 나라 이웃 나라」라는 나의 교양만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갔어요.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좀 풍요롭게 살고 싶으면 지방대학에 들어가세요. 대학 서열 안 따지면 원하는 지방대에 갈 수 있습니다. 취업이요? 올해 국내 최고 대학 영문과 졸업생 취업률이 38%입니다. 취업 잘 되는 명문대 공대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도 오래 버텨야 55세 퇴직입니다. 100세 시대인데 그 다음엔 뭘 할 건데요?

100세 시대는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마라토너처럼 살아야 합니다. 길게 내다보고 페이스를 조절해 뛰어야 돼요.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날씨도 즐기고 길가에 핀 꽃 구경도 하면서. 무엇보다 지치지 않아야 돼요. 건강하게 일하는 기간을 기준으로 하면 여러분은 기성세대보다 두 배 더 일해야 합니다. 직업은 3~4번 바꿔야 할 걸요?!

2016년 오늘의 세계는 전적으로 ‘리부팅’의 시대입니다. 우리 뇌구조를 완전히 리부팅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고요? 적어도 산업화 시대의 주역인 부모들이 바라거나 묵인하는 대로 학원 가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자면 안 돼요. 패배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 톡톡 튀는 사고를 하세요. 열심히 공부해 쌓을 수 있는 지식은 필요할 때 인터넷에서 서핑만 하면 됩니다.

지금은 스스로 탐험하고 발견ㆍ발명하는 시대가 아니라 조립ㆍ조합해 만들어내는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은 인문과 IT를 조합한 것이죠. 이렇게 조립ㆍ조합을 하려면 열심히 공부하기보다 스티브 잡스처럼 폭넓게 잡학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엉뚱한 사고를 할 줄 알아야 돼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시대에 열심히 공부하는 건 경쟁에서 도태되는 지름길이죠.

대학생활은 아날로그적 기회

그보다 여행과 독서를 많이 하세요. 배를 타면 육지가 멀어지면서 떠나온 항구가 차츰 작아집니다. 실제보다 작게 보이는 거죠. 그때 비로소 자신이 살았던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독서는 영상이 제공하지 못하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글을 읽는 동안 연상도 하고 추상도 할 수 있죠. 그렇기에 사람마다 같은 문장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보여주기 위한 취업용 스펙은 차별화가 안 됩니다. 거기에 자원을 투입하느니 차라리 책을 읽으세요. 요즘은 지식ㆍ정보의 원천이 PC, 스마트폰, TV 세 가지입니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 다 같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 확연히 차별화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펙이라 그렇지.

대학 시절은 아날로그적인 생활을 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친구와 동기, 룸메이트 등과 아날로그적 접촉을 통해 고민을 나누고 낭만을 즐기세요. 한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도 여러분들은 해당 안 됩니다. 많은 직업이 없어질 겁니다. 시대 변화를 읽어가면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 분야의 능력을 계발해야 돼요.

요즘 젊은 세대가 너무 불행해 합니다. 둘러보면 레드오션뿐이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절대불행도, 절대빈곤도 아닙니다.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상대불행이죠. 수저계급론이니 헬조선이니 하는 것도 나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나온 인식이라고 봐요. 객관적으로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입니다.

부모에게서 땡전 한 푼 물려받은 게 없지만 난 부모에게 감사합니다. 누구보다 많은 자유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죠. 만화를 그렸지만 돈을 벌었기에 반대하시지 않았죠. 고1 때 시작한 만화 알바가 평생 직업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