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❶

▲ 영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상’ 한을 풀어준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알레한드로 이냐리투(Alejandro Inarritu) 감독의 2015년 최신작 ‘레버넌트(The Revenant):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영화 포스터는 흥미롭다. 화면 가득 생존기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Leonardo Dicaprio) 얼굴을 내세운다. ‘레버넌트’가 아카데미상에 맺힌 디카프리오의 평생의 한을 풀어준 영화로 화제를 모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영화는 마치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상 수상 분투기’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타이타닉(1994)’의 절대 꽃미남 디카프리오가 누더기와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한겨울 얼음강을 허우적댄다. 물고기를 날로 씹어 먹고, 얼굴에 피떡칠을 해가며 들소의 생간을 뜯어 먹는다. 마치 “아카데미상, 이래도 안 줄 거냐?”는 기세다.

포스터에 적힌 ‘카피’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피의 대가, 반드시 치를 것이다.’ 문구만 보면 디카프리오가 벌이는 잔혹하고 화끈한 복수극을 예상하게 한다. 그러나 카피와 달리 복수의 과정과 결말은 화끈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실망했는지 흥행성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실존인물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박찬욱 감독도 휴 글래스(Hugh Glass)라는 미국 서부개척시대 모피사냥꾼의 처절한 생존기에 매력을 느껴 새무얼 잭슨(Samuel Jackson)을 주연배우로 설정하고 구체적으로 영화화 작업에 나섰다가 놓아버렸다고 알려진다. ‘올드보이’ 등 소위 ‘복수 시리즈’로 명성을 떨쳤던 박찬욱 감독의 ‘레버넌트’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다면 아마도 우리관객들이 기대한 ‘복수극’을 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론 실존인물의 ‘논픽션’을 제아무리 뛰어난 이야기꾼인 박찬욱 감독이라도 그 특유의 ‘복수극’으로 각색하는 데 한계를 느껴 영화화 작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휴 글래스는 복수 대신 피츠 제랄드의 운명을 ‘신의 뜻’에 맡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미국시장에 배포된 포스터는 그나마 영화 ‘레버넌트’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한다. 한국시장 포스터와 일치하지만 단 하나 ‘카피’ 문구가 다르다. ‘피의 대가, 반드시 치를 것이다’는 문구의 자리에 ‘Blood Lost, Life Found’라는 문구가 자리 잡고 있다. ‘생명을 잃고, 생명을 얻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야생에 산 채로 매장당한 휴 글래스(디카프리오)는 ‘올드보이’ 최민수처럼 좁은 일자一字 복도와 엘리베이터 속에서 선혈이 낭자한 장도리 활극을 펼치거나 자신을 15년간 감금한 원수의 생이빨 15개를 하나씩 뽑는 화끈한 복수극을 펼치지 않는다. 실존인물이었던 휴 글래스의 스토리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자신을 생매장해버렸던 피츠 제랄드(톰 하디)를 붙잡아 자신이 당한 대로 복수한 것이었다면 아마도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데 주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휴 글래스는 ‘박찬욱 식’ 복수를 택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휴 글래스는 거대한 회색곰에게 짓뭉개지고, 찢긴 몸으로 미주리강을 거슬러 300㎞의 지옥행군 끝에 마침내 미군요새에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피츠 제랄드를 붙잡는다. 그의 ‘처단’은 자신의 손으로 피츠 제랄드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운명을 ‘신의 뜻’에 맡기고 인디언 무리에 넘기는 것으로 끝난다.

회색곰에게 사지가 뭉개지고 찢기는 ‘죽음에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휴 글래스는 신神을 만나고 ‘생명에의 외경畏敬’을 온몸으로 깨우친다. 웅대한 자연과 그 섭리는 감히 신이 아니고는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자신의 생명도 외경의 대상 그 자체다.

신에게 부여받은 자신의 생명은 신이 창조한 대자연의 또 다른 뭇생명들에 의탁한다. 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그토록 외경스러운 생명이란 감히 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함부로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휴 글래스는 ‘생명을 잃고(Blood Lost)’ 죽음에서 돌아오면서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Life Found).’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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