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❷
현지에서 인디언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까지 두고 거의 토착화된 휴 글래스(디카프리오). 그는 ‘태평양 모피 회사’의 뛰어난 길잡이로 손색없다. 인디언들의 습격에 원정대 대부분이 희생되고 몇 안 남은 생존대원들이 미군 요새로 고난의 행군을 하던 중이었다. 휴 글래스는 거대 회색곰의 습격에 온몸이 부서지고 찢겨 빈사瀕死상태에 빠진다. 원정대 대장 헨리는 결단을 내린다. 300달러의 보상금을 약속하고 피츠 제랄드(톰 하디)에게 휴 글래스를 부탁하고 떠난다. 휴 글래스가 죽을 때까지 옆을 지켜주고 죽으면 잘 묻어주라는 부탁이다.
피츠 제랄드는 요즘 화폐가치로 치자면 노후자금으로 충분할 만한 300달러라는 거금 욕심에 ‘산 송장’ 휴 글래스 옆에 남기로 자원自願한다. 그러나 인디언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불안감, 한시라도 빨리 원정대에 합류해야겠다는 조바심을 떨칠 수 없다. 그러려면 휴 글래스가 한시라도 빨리 죽어줘야 한다. 결국 피츠 제랄드는 의식은 멀쩡하나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휴 글래스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무덤을 파고 그를 처넣어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저항하는 휴 글래스의 인디언 혼혈아들까지 살해하고 자리를 떠난다.
영화 ‘레버넌트’의 이냐리투 감독은 관객들에게 피츠 제랄드가 저지른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악행에 어떤 벌이 합당한지 묻는다. 휴 글래스의 상실과 고통, 그리고 원한에 공감하는 관객배심원들은 당연히 사형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휴 글래스의 복수는 의외이며, 뭔가 어정쩡하다. 격투 끝에 빈사 상태에 빠진 피츠 제랄드의 숨통을 자기 손으로 끊지 않고 백인들에 대한 원한에 사무친 인디언 무리에 넘겨버리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한다.
기원전 1700년께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함무라비(Hammurabi) 대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표되는 ‘상응 보복법’을 명시한 인류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법전(Code of Hammurabi)을 남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명문을 야만스럽고 잔인한 원칙의 상징처럼 여기지만 사실 ‘상응 보복법’은 ‘과잉보복’을 금지한 가장 선진적이고 문명화된 법 조항이라 할 수 있다.함무라비 대왕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폭력과 원한의 원인을 과잉보복에서 찾았다. 이빨 하나를 다친 피해자는 가해자의 이빨 하나만을 다치게 하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가해자의 이빨을 모두 뽑아버려야 그나마 분이 풀린다. 이빨이 모두 뽑히는 보복을 당한 자는 상대의 이빨 모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여 버려야 성에 찬다.
휴 글래스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어쩌면 함무라비 대왕의 성찰이었는지도 모른다. 피츠 제랄드가 그를 사지死地에 내버린 것은 분명하나 죽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피츠 제랄드를 죽이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당한 만큼만 돌려줘야 한다. 휴 글래스도 빈사 상태의 피츠 제랄드를 사지에 내버리는 선에서 복수를 마무리한다.
“복수의 길을 떠날 때에는 무덤을 두 개 파놓고 떠나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내가 상대방 한 명에게 복수하면 상대는 반드시 내 쪽 2명을 죽이는 복수를 해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의 욕설 한 마디가 욕설 두 마디로 돌아오고 급기야 목숨을 건 도로 위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아버지를 모욕했다고 토막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을 학대했다고 부모를 죽여 묻어버리는 ‘과잉보복’이 범람한다. 나라 사이에도 10배, 100배의 보복을 부르짖고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에 빠진다. 3500년 전 함무라비 왕이 개탄할 일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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