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경제 비교해보니…

▲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지켜지지 않는다.[사진=뉴시스]
성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실업률은 10%를 넘나들고, 경제성장률은 정체기에 빠진 지 오래다. 노조의 힘은 워낙 세서, 개혁을 꾀하기도 어렵다. 프랑스 정부가 ‘노동의 유연화’ 전략을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도 불황을 뚫을 비책秘策으로 같은 전략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한국의 경제는 비슷한 상황일까.

‘프랑스 좌파정부도 단행한 노동개혁 거야巨野는 똑똑히 보라’ ‘노동개혁에 비상수단 동원한 프랑스, 두 손 놓은 한국’ ‘야野는 프랑스 좌파 노동개혁에서 배워라’ ‘노동개혁, 프랑스는 달리는데 우리는 제자리에’…. 최근 언론에 등장한 노동개혁 관련 사설 제목들이다. 야권을 향해 “프랑스 좌파 정부도 하는 노동개혁을 왜 우리는 못 하느냐”는 다수 언론들의 질타다. 심지어 이런 내용에 걸맞은 프랑스 대학 교수까지 등장시켜 “한국에도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한 언론도 있다.

과연 우리나라도 프랑스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과감한’ 노동유연화 정책들을 밀어붙여야 하는 걸까. 답을 내리기 전에 한가지 명확히 할 게 있다.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비슷한 상황이냐는 거다. 먼저 국내총생산(GDP)을 보자. 글로벌 불황이 본격화한 2009~2015년 한국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3.14%, 프랑스 GDP 성장률은 0.48%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어렵다고는 해도 GDP 성장률만 떼어 놓고 보면 한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낫다.

GDP 성장률은 1인당 GDP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1인당 GDP는 2만7340달러(USD 기준)였다. 전년 대비로는 624달러 줄었지만, 2009년보다는 8994달러가 늘었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1인당 GDP는 연평균 651달러씩 총 3906달러가 줄었다. 특히 지난해 감소폭은 5008달러로 가장 컸다.

실업률에서도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큰 차이를 보인다. 2009~2015년 우리나라의 연평균 실업률은 3.44%였지만, 프랑스의 연평균 실업률은 9.68%에 달했다. 이 기간 프랑스의 실업률은 단 한번도 9%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10.6%까지 올랐다. 프랑스와 한국의 전체 인구가 각각 6439만명, 5061만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인구 대비 체감 실업률도 프랑스가 훨씬 높은 셈이다.

종합하면 올랑드 정부가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게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만큼 프랑스 경제가 악화되고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 상황은 아니다. ‘프랑스를 좇아 노동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긴 어렵다는 얘기다.

노동환경은 경제상황과 정반대다.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2014년 기준)은 한국과 프랑스가 각각 2124시간, 1472시간이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프랑스보다 1.4배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228시간)에 이어 2위다. 연평균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은 한국이 9.5%, 프랑스가 32.2%다.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노동시간이 짧고, 사회안전망은 더 잘 갖춰져 있는 구조다.

더구나 프랑스 노조의 교섭력은 우리나라 노조와 비교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하다. 일례로 프랑스는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가 사측과의 교섭을 통해 노동규칙을 정하면 모든 사업장에 이 규칙이 적용된다. 사업장별로 규칙을 정하는 우리나라와는 노조의 교섭력이 다르다. 노조가 없는 기업도 노조활동에 부담을 느낀다. 프랑스에서 불황을 뚫을 전략으로 ‘노동 유연화’가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상황에 같은 처방할 텐가

장상환 경상대(경제학) 교수는 “우리나라와 프랑스가 처한 상황이 다른데도 노동유연화 정책을 무조건 따라하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의 노동시간 연장은 우리보다 앞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분배정책을 폈다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판단해 원래대로 복구하는 작업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의 권익은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과도할 정도로 잘 보장되고 있다. 사회안전망도 잘 갖춰져 있다. 프랑스 정부의 노동유연화는 그런 배경에서 나온 거다. 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노동유연화를 주장하려면 프랑스 수준까지 올리고 난 후에 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 대기업 노조의 권익을 끌어내릴 게 아니라 아무런 권익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권익을 높이는 게 더 시급한 과제다.”

간단히 말해 프랑스는 노동자 권익을 줄일 만한 여지가 있고, 이를 통해 경제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장 교수는 “프랑스의 복지체계는 따라 하지 않으면서 노동유연화 정책만 따라 해야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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