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갤러리 | 백지혜 화가

한국의 현대미술은 한동안 편협된 양상을 보였다. 서양미술이 세계시장을 주도하자 우리 미술계에서는 동양화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낮아졌다. 동양문화 또한 시대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의 전통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을 이어오던 많은 기법의 맥은 점점 사라지거나 남아 있다 해도 아주 미세하게 이어졌다. 공필화(비단채색화) 또한 몇몇 장인에 의해 그 맥을 이을 뿐이었다. 공필화는 고려시대의 불화나 조선시대의 궁중 초상화로 사용됐다. 비단채색화는 비단 뒷면에 채색을 올리고 이를 배경으로 세필을 사용해 한올 한올 세밀하게 그려내는 방법이다. 치밀한 계획으로 이뤄지는 섬세한 작업이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백지혜 작가는 한국미술계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채색법(공필화)을 익혀 자신이 간직한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다.

“첫눈을 기다리며 설레던 마음, 나무 그림자 아래 지친 마음을 잠시 쉬어갔던 순간, 풀숲에서 들꽃을 발견하고는 나만의 보물을 찾은 듯 기뻤던 기억…. 일상에서 찾게 되는 작은 이야기들.”  –작가노트–

초상화는 인물화다. 인물화는 대상이 되는 인물을 오랜 시간 기억하고 보존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인물화에 담긴 모습을 보고 그의 삶을 대충 짐작해 낸다. 담긴 모습에는 희로애락이 있기에 일반적으로 정면에서 그리는 초상화와 달리 백지혜 작가는 인물의 정면성을 피한다.
측면의 모습과 주변 상황으로만 전개하는 그의 기법은 희喜, 로怒의 감정보다는 애哀, 락樂의 이미지를 화면에 담는다. 인물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앳된 얼굴이다. 인물은 한쪽으로 빗대어 있고 남은 공간을 여백으로 남긴다.

전통 동양화에서 보여 주는 여백의 공간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인물이 주시하는 근접된 시선은 여백의 한계를 보인다. 전통채색화법을 통한 인물의 표정도 경직된 모습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 제목에서와 같이 현대감각을 살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작가는 소재를 미화하기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바람을 일으켜 홀씨를 날리는 모습을 보고 탄생한 ‘바람 불던 날’이나 손에 놓인 풀꽃을 보고 ‘손안에 머무르다’, 나무그늘에 앉아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의 ‘쉬어가다’라는 작품 등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작가는 한 소녀와 주변의 상황전개를 통해 지난 기억을 더듬어 간다. 어린 시절 순수한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본능과 당시의 순간순간의 행복들을 고이 간직하려 한다. 도시화와 상업화로 인해 바쁜 우리의 삶의 쉼표를 찍듯, 잃어버리기 쉬운 우리의 순수한 감정을 깨우며 쉬어가라는 듯하다.
김상일 바움아트갤러리 대표 webmaster@thescoop.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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