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18~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등장한 ‘다국적 기업’은 이익만을 좇는 경향이 있다. 평등, 정의 등은 이 기업들에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한국의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는 옥시 사태를 ‘모럴해저드’ 측면에서 봐선 안 되는 이유다. GM 등 한국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데 급급했다. 다국적 기업이라는 복면에 숨은 탐욕을 살펴봤다.

▲ 지난 5월 23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한 옥세레킷벤키저의 존 리 전 대표.[사진=뉴시스]

영국 레킷벤키저의 옥시 제품인 가습기살균제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생명을 빼앗긴 이도, 심각한 폐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사건을 예측하고도 은폐만을 생각한 이해 당사자들은 여전히 책임을 벗어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영국 본사는 한국 법인에 책임을 떠넘기고, 한국 법인은 영국 본사로 공을 넘기는 핑퐁 게임까지 자행해 분노를 사고 있다.

필자(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김우일)는 이 사태의 원인을 불량제품의 생산ㆍ판매라는 ‘모럴해저드’가 아닌 다국적 기업의 설립배경과 생태조직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19~20세기 경제는 물자ㆍ자금ㆍ기술ㆍ인력이 자국에서만 흐르는 ‘갈라파고스 현상’이 지배했다. 국가간 장벽이 워낙 두꺼웠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현상’이란 육지로부터 고립된 탓에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를 빗댄 말로, 자국내 기업이 세계로 진출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시장은 날로 팽창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제품이 대량생산되면서다. 이는 국가권력과 결탁한 기업들이 다른 국가를 식민지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를테면,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데,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시장을 확대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이때 태어난 것이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로 마수를 뻗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들은 가격ㆍ품질ㆍ인력ㆍ기술ㆍ자금 등 경영에 도움을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진출해 거점을 만들었다.

그중엔 ‘태양이 지지 않는다’는 영국의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기업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현지 시장에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다. 사람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익창출에만 매달렸다.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식민지에서 담배를 팔기 위해 아래와 같은 광고를 내보낸 것은 대표적 사례다. “배고픔을 없애주는 유일한 식품보조제, 바로 니코틴 담배. 담배를 피우는 순간 5초 만에 배고픔이 사라진다.”

이 광고로 담배는 동남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고, 이를 판매한 다국적 기업은 큰 이득을 거머쥐었다. 1840년대 영국 동인도회사는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무제한으로 밀거래해 중국인 200만명 이상을 아편중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자! 이제 대우그룹의 이야기를 해보자. 대우그룹은 자동차 부문을 다국적 기업인 미국의 GM과 합작투자로 운영했다. 이때 필자가 느낀 점은 이렇다. “다국적 기업은 도덕ㆍ평등ㆍ이해ㆍ정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익에만 집중하는구나.”

실제로 GM이 합작 내용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세가지가 있었다. 재무 부문 장악, 기술개발 부문 장악, 영토조항이었다. 마지막 영토조항은 GM이 진출한 시장에는 대우그룹이 나가선 안 된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자금조달ㆍ기술개발ㆍ해외판매망을 GM의 손아귀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득권을 주장한 GM은 극동아시아 시장이 위축된 1993년 대우그룹에 모든 지분을 넘기고 철수했고, 투자금의 5배나 되는 금액을 남겼다.

당시 협상을 맡았던 필자는 GM의 이해타산적인 상술商術에 진저리가 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 무서운 것은 그다음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무너지자, GM은 다시 대우차를 헐값에 사들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GM은 여전히 한국시장에 불안요소를 주고 있다. 이익만 신경써 사들이고 철수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국적 기업의 행동 원리를 눈여겨보는 건 경영자에게 중요한 일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선택할 땐 체크 포인트를 넓히는 게 좋다. 다국적 기업이라는 복면 뒤에는 탐욕이라는 본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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